8. 이젠 울지 말아요
"은영아! 그 동안 애 많이 썼다. 이젠 우리 일이랑 잊고 너
자신를 위해 살도록 해라. 그리고 가능한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
져 살았으면 하는 아빠의 마음이다."
아빠의 간곡한 말씀이 있어 살림을 따로 나기로 하면서도 가게
일과 집안 일이 걱정스러웠지만 은희가 주동이 되어서 동생들과
짰는지 자기들끼리 알아서 아빠와 동생들 그리고 가게를 챙길
터이니 친정 일에서 손을 떼라며 가족 밖으로 내몰려 버렸다.
"은미가 떠나면 아빠와 은정이, 은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서 그와 나는 우이동에 방2개짜리 전셋집을 얻어 신
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기에 나이가
1
많은 탓도 있었지만 대학을 마치지 못 한 학력에 아직 결핵이
완치되지 않은 터여서 짬짬이 시댁에서 운영하던 주유소에 나
가며 4학년 2학기를 등록했고, 나는 아침부터 소꿉장난 같이
작은 냄비에 밥을 짓고 방바닥 걸레질과 설거지를 끝내면 놀이
터 벤취에 앉아 그때까지 마음 놓고 바라 본 적이 없는 하늘에
고개를 고정하고, 잊었던 나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신혼살림 한 달이 되어 갔지만 그는 그대로 바쁜 것인지 술에
취해 비틀대며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고,
나는 대문 앞에서 행여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싶
은 생각보다는 그저 의무적으로 늦은 밤을 맞고 있다가 그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서기 일쑤였다.
"왜 늦었냐고 물어 보지도 않니?"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커다란 봉투를 들고서 비틀대
는 그를 양철지붕이 달린 두 평 남짓한 부엌을 지나 방으로 끌어
2
들였다.
"은영아!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니?"
충혈된 눈으로 술 냄새를 피우며 대답을 기다리다가 머리를 감싸
며 한 숨을 쉬던 그는 이불이 채 펴지지도 않은 방바닥에 길게 누
워 버렸다. 보름 째 이런 일의 반복이었지만 양말을 벗기고, 벨트
를 풀러 바지를 헐겁게 하고는 이불을 덮어 준 뒤 알지 못할 불안
감에 그의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나날들이었다.
다음날 열 시쯤이 되어 아침을 들고 난 그는 내 손을 잡아끌며 전
날 가지고 온 봉투를 열어 보이며 내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은영아! 너 등산해 봤냐? 나도 군에서 해 보았지 사회에 나와서
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매일 산에 한 번
가보자."
나도 산이라고는 딱 한 번 가보았지만 산에 올라 본 적은 태어나서
없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높은 곳을 향해 걷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올라가
면 내려 올 산을 의미 없이 오른다는 것이 괜한 일이다 싶어서였
다.
3
양말을 신기고 등상화 끈을 매주고는 배낭까지 둘러메게 하는 그
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당시의 서먹함
을 넘어보려는 그의 노력에 동참해서 그 날 나는 난생 처음 산에
오르기를 시작했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숨 채기를 하며 그 때까지 비탈 걷는 것 정도
면 하고 따라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을 향해 걸음을 더 해
갈수록 산에 오른다는 것은 온 몸에서 진기를 뽑아, 악취 나는 노
폐물과 병든 마음을 땀과 함께 송두리째 끄집어내고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그런 것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어렵고 힘든 고비에서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었고, 그와 함께 힘든
고비를 타고 넘으며 서서히 그를 향해 내 마음이 열려감에 놀라
면서, 정상의 서면 찌든 번뇌보다는 성취감에 함께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4
한 시간 거리에서 시작한 산책 같던 산 타기가 거리와 속도를 더
해가며 어느 순간 산에 다녀오지 않으면 하루가 가지 않았다고 생
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를 대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에 가자.”
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진달래 능선으로 해서 대동문으로, 백련사로 해서 백운대로, 아카
데미하우스에서 칼바위를 거쳐 대남문으로 다시 구파발로 불광동
으로......자연 속에서 거친 호흡과 함께 차가웠던 가슴에 정을 담
으며 잊혔던 조은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자연은 마음에 병을 치유 한다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목젖을 다들
어 내놓고 크게 너털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그토록 서먹하던 그와
의 관계도 서서히 연인의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던 산 속 어느 날
코펠로 밥을 끓여 밥상을 차리며 궁상을 떠는 그를 지켜보다가
때늦은 행복감과 함께 그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
다.
5
"은영아! 난 네가 밝아지는 모습이 너무 고마워."
결혼 후 별로 말이 없던 나는 그 날도 대답대신 그의 어깨에 머리
를 기대는 것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 했었다.
"은영아!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민우도 네가 나와 결혼해
서 살고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꺼야."
민우의 이름만 들어도 힘들던 내 마음도 그 새 많이 정리가 되었
던지 덤덤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나의 변화를
말해 주는 듯 했다.
불씨만이 간신히 살아있는 듯한 모닥불에 다가앉으며 낮게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 어쩌면 그들이 내 곁을 떠나간 것인지도 몰라.”
그 날 우리는 오래 전의 이야기들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즐거워
하다가 결국은 노빈이 코피 터지던 군대 첫 휴가 때 이야기가 나
오면서 마음에 담고 살았던지 그의 얼굴이 험악해졌었다.
6
"조은영! 또 나를 코피 나게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꺼야."
"호호호호 그 날 나는 엉덩이에서 불이 났었어. 얼마나 세게 때리
던지 집에 가서 보니까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어."
“밤이 너무 깊었다. 그만 들어가 자자.”
우리는 새벽 2시가 다 되어 두 사람이 겨우 들어 갈 수 있는 스리
핑백이 있는 텐트로 들어가 맨 몸을 비비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넉 달 만에 처음으로 맞는 신혼의 밤이 너무 짧았
던 우리는 아침도 거른 채 부지런을 떨며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안
으로 걸어 잠근지 3일째 되는 날 그는 또다시 코피를 흘리기 시작
했다.
후후후~ 그 날 이후 우리는 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오는 사이
가 되어버렸다. 산에 오를 때도 팔짱을 끼고 걸었고, 집으로 온다는
그의 전화를 받으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그를 기다렸다.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친정 일은 애써 알고 싶지 않았
7
고 시댁에서도 우리가 안정 될 때까지 가만히 놓아두는 것 같았다.
"내일 제기동이나 가자."
그 동안 아빠나 은수 생각이 나면 무조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며
잊으려 했던 친정집이었는데 마음을 헤아려 가보자고 하는 그가
고마웠다.
우선 아빠께 드릴 내복과 은수에게 줄 운동화를 사서 짐을 챙기며
다섯 달 만에 가보는 집과 가게가 어떻게 변했을까 무척 궁금하
여 그 날 밤은 꼬박 뜬눈으로 지샜던 것 같다.
번잡함을 없애려고 예고 없이 방문하기로 하고 그와 경동시장에
들러 가족들이 모여서 충분히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어서 오너라."
아빠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하게 웃음이 피어나고 은정이가 달려
와 내 품에 안기면서 누가 보면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뜨거운 장
면이 되어 버렸지만 슬픔보다는 기쁨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사위! 그래 신혼살림은 재미가 있나?"
"아버님 앞치마 두르신 것을 뵈니 십 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8
"예끼 이 사람!"
"형부나 언니나 얼굴이 다 좋아 보여요. 깨가 쏟아지나 보죠?"
은정이가 거들었다.
"은정아! 오늘은 가게 일찍 닫고 그만 들어가자. 벌써 여덟시 반
이에요."
모두들 서둘러 가게를 치우면서 은정이는 은수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고 밥을 해 놓으라는 전화를 했다.
"은수가 밥을 할 줄 아니?"
"응 언니! 아빠와 내가 가게를 맡아서 하고 은수는 집에서 밥하
고 청소하는 것을 맡기로 했어."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누나!"
까까머리 중학생인 은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현관 밖에 나
와 나를 기다리다가 뛰어와 달려들며 내 품에 안겼다. 너무 좋아
하며 뭐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막내의 손을 잡고 현관을
들어서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상을 차렸다.
9
그와는 하루를 자고 가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기에 느긋한 마음으
로 아빠와 은정이, 은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등심을 굽고 된장
찌개와 고등어구이, 김장김치가 전부인 상이었지만 좋아하는 사위
를 맞으신 아빠는 소주잔을 연거푸 들고 계셨고 은수는 신이 났는
지 아빠께 자기도 남자이니 술을 한잔 달라고 해서는 몇 잔을 마시
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침을 준비하려고 일어났더니 아빠는 벌써 새벽시장을 가
시고 계시질 않았다. 밀린 빨래며 방 청소를 하며 이렇게까지 어
지럽게 살지 않았는데 싶다가도 은정이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
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냥 지내다가 주말이 되면 은
희, 은애, 은미가 돌아가며 집에 와서 청소며 빨래를 해 준다고
했다.
아빠의 전송을 받으며 돌아서는 발길이 무거웠지만 굳이 아빠는
"은영아! 걱정 말아라. 너는 가족을 위해 할 만큼 했어. 이제부터는
네가 행복해져야 이 아빠는 웃을 수 있단다."하셨다.
집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주름이 깊은 노인이 다되신 아빠의 모
습과 어지러운 방들의 모습들, 앞치마를 두른 아빠의 모습과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은정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0
아빠의 말씀대로 나는 가족을 위해 할 만큼 한 것일까? 엄마와의
약속은 지킬 만큼 지킨 것일까?
집으로 오자마자 배낭을 꾸려 산에 오르며 그에게 산으로 간다는
쪽지를 써 놓고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섰다. 가을이 깊어 붉게
물든 북한산의 단풍이 붉은 노을과 함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지
만 전 날의 느낌과는 달리 한 잎 한 잎 날리는 바람결 낙엽들을 향
해 생각 없는 발걸음으로 목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이제 겨우 나를 찾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는데, 솔직한 심정이라면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램이 신혼살림을 차린 후 한 번도
아빠와 동생들을 찾아보지 않은 이유는 아니었을까? 넋을 놓고 앉
아 엄마한테 했던 마지막 약속을 뇌이고 또 되뇌이다가 민우와 민
영이의 흐릿한 모습이 눈앞을 가려 왔다.
두 손을 무릎에 깍지 낀 채 머리를 깊게 묻고서 오래전부터 이겨
내리라 다짐하며 참아왔던 슬픔이 인적 끊긴 산속의 침묵과 함께
나를 감싸 안았다. 그 새 주위는 어둠이 내리고 한기로 몸을 움추린
나는 나지막이 떠오르는 보름달의 유혹과 쏟아지는 별 빛, 절벽 아
래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정말 그냥 어둠이 깔린 저
깊은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11
유혹은 시간과 함께 더욱 강해져 슬픔보다는 기쁘다는 생각이 들
기 시작했고 눈물에서 웃음으로, 아무 생각 없는 담담함이 생각지
못함 용감함으로 기분까지 좋아지면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두 눈을 감고 나직이 속삭였다.
“나를 받아주소서.“
그의 손에 이끌려 절벽이 있던 바위에서 어두운 밤길을 아무
생각 없이 내려왔다. 작은 바위 공간에 모닥불이 타 오르고. 내 몸
은 겨울용 파카로 감싸여 진 채 불빛에 어른거리는 눈에는 걱정스
럽게 지켜보는 그가 있었다.
"좀 괜찮아?"
그는 뜨거운 커피잔을 내게 권했다.
“왜 그랬어. 나만 남겨 놓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니? 난 네게 어
떤 의미의 존재이니?“
무엇하나 잘한 것이 없었던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모닥불에 시선을
정지한 채 애써 눈길을 피하며 그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을 사랑한다는 그가 있는데 아직 내게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 깊은
곳에 앙금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12
무엇이 이다지 내 몸속에 숨어 끈질기게 육신을 옥죄어 오는지? 어쩌
면 나는 변치 않는 노빈의 사랑을 받아드릴 자격이 없는 여자는 아닐
까?
“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 여자였어. 난 그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당신만 그 사실을 몰랐던 거야.“
“그렇지 않아. 자신을 자꾸 힘들게 하지 마라. 지금까지 너는 자신
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뿐이야. 아니 알면서도 외면 한 것
뿐이야.“
“정말 그럴까? 나는 자신이 생기질 않아. 또 ........”
모닥불가에 마주 앉은 나만을 사랑한다는 착한남자에게 또 다른
이유를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은영아! 사람에게 과거나 추억은 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생기
는 법이야. 잘난 과거도 슬픈 과거도 아름다운 추억도 잊고 싶은
추억도 있지만 그것은 과거와 추억일 뿐 현실 속에 자신과 함께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거야.
단지 살아가며 가슴에 보듬은 채 가끔 꺼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아픈 상처는 시간이 약이고 아픈 기
13
억은 인간이 가진 가장 훌륭한 치료약인 망각으로 치유된다는 말
이 있잖아?“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병원을 다녀와서 오랜 시간을 모든 과
거를 잊고자 노력하며 살아왔고 어느 순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노빈의 청혼을 허락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날의 일들은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에 대한 분노이고, 엄마와의 약속을 져 버리
려고 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곁으로 다가와 붉게 익은 충혈된 슬픈 눈으로 옷을 다시 여며주며
뜨거운 커피를 잔에 부어 주던 그의 팔을 가만히 잡아 가슴으로 안
았다.
"미안해. 노빈씨 정말 미안해."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서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통금이 끝나는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때가 다 되도
록 늦잠을 잤다.
“노빈씨 오늘은 수업이 없어요?”
깨어 있었지만 그는 두 눈을 감고 잠이 든 듯 대답이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야 커피 한잔을 받아 들며 그날 처음 그가
말을 꺼냈다.
14
"내 생각인데 어제 처갓집에 가 보니 살림이 예전 같지 않더라.
우리가 처갓집으로 들어가서 장인 모시고 살면 어떨까?"
대답 없이 바라보는 내 시선을 피하며 혼자 말을 이었다.
"그게 좋겠어. 아직 애도 없고 가게와 시댁도 가까우니 은영이가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자. 오늘이 목요일이니 토요일 날 이사를
가는 것으로 하고 일단 이사 간 다음 이 집은 정리 하는 것으로
하자.“
숙인 고개가 들려지질 않았다. 내게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마음
을 가진 사람이 내 차지가 되어 이다지 깊은 사랑으로 나를 감싸
주고 있는지? 어떤 기쁨보다 이런 사람이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
며 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했다.
이사짐이라야 별것 없었다. 장롱과 화장대, TV, 냉장고 그리고 소
꿉장난 같던 부엌살림 약간......토요일 우리는 아빠의 반대를 무릎
쓰고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안방은 아빠와 은수, 건너방은 우리부부, 작은방은 은정이가 쓰기
로 하고 은희, 은애, 은미와 제부들이 아침부터 몰려와 한 몫들을
해 주었다.
"아이고 형님! 이제야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처갓집에 처
형 장모가 안 계시니 누가 사위 대접을 해 줘야 말이지요."
15
그와 친구 사이인 곽방근이 한마디 했지만 아빠께서 특별히 입조
심과 서열을 분명히 해 놓으신 터라 그리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
고 그도 아래로 동서를 셋씩이나 두어 기분이 좋았던지 아침부터
아랫동서들을 몰고 다니며 술을 입에 달고 있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저에게 이렇듯 착한 남자
를 택해 주시고 또한 아빠를 모실 수 있도록 해주셔서."
처갓집에서의 첫날밤을 맞은 남편의 곤히 잠든 모습은 이제
까지 느끼고 보아온 노빈이 아니었다.
"저는 앞으로 이 남자의 여자로써 평생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순
종하며 살겠습니다."
분가하기 전처럼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아침에 장보기는
아빠가, 가게는 나와 은정이가 꾸려 갔으며, 다음해 그이는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하여 선생님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결핵환자였
다는 이유로 학교 배정을 받지 못했다. 몇 군데 취직도 되었지만
언제나 신체검사에서 고배를 마시는 통에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16
다행이랄까 가게에서의 수입이 우리 가족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
었지만 용돈을 타 쓰는 늘어진 그의 어깨를 보며 언제나 마음이
아팠다.
서른 두 살 겨울에 나는 쌍둥이를 낳았다. 키가 커서 인지 그
리 배가 많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산달이 되어서야 쌍둥이인 줄을
알고 몹시 놀랬지만 한편으로는 한꺼번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이 동희와 동진이였다.
취업을 포기한 그이는 청량리역 근처에 옷가게를 열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인지 1년이 채 못 되어 우이동에서 이사 나오며 받은
전세보증금과 부모님에게 빌린 돈을 모두 날리고 빚만 안은 채 문
을 닫아야 했다.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으니 당분간 산에나 다니며 쉬세요."
자연히 그는 집에서 동희와 동진이를 돌보며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
하는 아빠가 되어 갔다.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싶어 어떨 때는 내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
어 보이기도 했고, 그 역시 아이들이 반갑게 내게라도 달려들면 야
17
릇한 질투를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크게 표현이 없는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 온 후 아이들
을 위한 것에 거의 하루를 다 보냈다. 유치원도 손잡고 가고 아이들
이 끝나는 시간이면 여지없이 정문에 버티고 서 있다가 아이들과 함
께 집으로 돌아오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다행스럽다고 생
각했다.
그 해 26살이던 은정이가 결혼을 했다. 집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67세의 노인이 되신 아빠와 20살의 어엇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막내
그리고 우리 가족이 있었다.
그 동안 분식집과 주변 가게를 사들여 점포들에서 세를 받는 돈으로
도 살림이 충분해지면서 분식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이는 부
모님으로부터 한 달 생활비와 이자를 꼬박꼬박 드리는 조건으로 주
유소를 물려받아 사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성실하
고 책임감 있는 남편으로 내 곁에 남아 주었으며 더불어 동희와 동진
이에게는 더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커 감에 따라 그와 상의 끝에 친정집 복도 맞은편에 아파
트를 새로 장만하고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새로 꾸미면서 그
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한 시간이 거짓 같이 내게 찾아 왔다.
18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너무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동진, 동희
를 보며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행복과 희망을 주는 것
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살다가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맞으며 과거와 추억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유령처럼 되살아나
면서 행복과 기쁨 이면에 자신도 모르게 내쉬는 한 숨을 쉬어야 했
다.
내 나이 43세 되던 해에 아빠께서 73세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눈을
감으시면서도 나와 그의 손을 꼭 잡으신 채 슬픔보다는 안도의 행복
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이에게 막내를 부탁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아파트를 정리해서 은수 의사에 따라 강남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사
주고 남는 돈은 동생들에게 골고루 보태 주는 것으로 재산 정리를
끝냈다.
동희와 동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마지막으로 은수가 서른
하나의 나이로 결혼식을 올리던 날 언니와 형부를 대신해서 부모석
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이는 "이제 다 끝나는 것 같구료."하며 눈물
을 참지 못하는 나의 손을 지긋이 잡아 주었다.
19
마흔 여덟살을 맞으며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아이들 뒷바라지
와 남편의 출근을 돕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안방을 지키며 TV에 빠져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
고 오전에 수영장을 다녀오고 나면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 박혀 보
내기 일 수였다.
간간이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바다가 있는 연안부두나 강릉의 콘
도를 빌려 며칠씩 서울을 비우는 것이 삶의 변화를 느끼는 유일
한 낙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 말을 잃어 가고 있었고 그의 변함없
는 사랑 속에서도 슬픈 모습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날들이 많아져
갔다.
"여보 우리 온천으로 바람이라도 쐬고 옵시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구요?"
"고2 정도면 며칠 동안 알아서 들 하지 않겠소?"
평택평야를 지나며 추수가 끝난 들녘의 생기 없는 황량함이 변화
없는 촛점으로 시선을 붙들고 있었고 가끔 짚을 태우는 하얀 연기
가 황토빛 들판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신 요즈음 아픈데 있어? 처남 결혼 후 부쩍 말이 없는데?"
20
"그렇게 보였어요? 당신하고 애들이 있는데 무슨?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때면 극도로 긴장한 채 내게 숨겨져 있는 과
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 세웠다.
“아니요. 고민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요."
할 말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대답을 멀리하고 창 밖에 얼굴을 고
정하자 그는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콘도에 짐을 풀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작은 탕에 함께 몸을
담그고 그의 등 뒤에서 앉아 어깨에 물을 얹으며 근육을 마사지
해주면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행
복해 했다.
"당신 정말 괜찮아?"
"왜 그래요? 집에서 뒹구니까 꼴 보기 싫어요?"
"나는 당신 곁에 항상 있기로 했으니 꼴 보기 싫어 할 자격이나
있나? 그래도 내가 코피 나던 그 날은 정말 잊혀지질 않아. 무슨
여자가 남자에게 그렇게 우왁스럽게 주먹질이야."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하기사 나는 그 날 엉덩이를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이야기 했었죠?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났던데..."
21
킬킬거리며 그가 고개를 돌려 키스를 했다.
그날 밤 우린 늘 그랬던 것처럼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흔들다
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자리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오래 전부
터 행한 두 사람만의 약속된 의식인양 사랑에 굶주린 여자가 되
어 언제나 나만을 바라보며 사는 그에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애정과 욕정과 감동을 묶어 잔잔한 유혹으로 감싸 안고는 서로의
사랑을 오래도록 확인하려고 몸부림쳤다.
신통한 것이 그 곳에 십 년이 넘게 한 해면 몇 차례씩 함께 찾는
시간을 갖고 나면 거짓 같이 한 동안 나는 현실의 세계에서 그
이나 아이들만을 위한 삶에 빠질 수 있었고 크게 웃으며 행복에
넘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둘만이 남은 토요일 아침시간 TV에
서는 “이산가족 만남”이라는 프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가 출근을 늦추며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어리광을 부려 수영장
에 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착한 서방님 소원을 들어주는 셈치고 다
리를 주무르며 TV를 보았다.
22
그곳에서는 5살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서울구경 왔다가 생이별
을 하게 된 가족이야기의 마지막 상봉 순간이 방영되고 있었다.
"오빠 왜~ 왜 나를 찾지 않았어.오빠~~ 왜 나를 찾지 않았어?
한 눈에 어렵게 인생을 살아온 듯한 동생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와
통곡을 보며 나는 세상이 주저앉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흐르는 눈물 속에 만남의 기쁨과 희망보다는 지난 세월에 대한
버려진 서러움을 토하는 서른두 살의 여인을 보며 그 여인이 내
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아 금새라도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혜정아! 오빠가 미안하다. 오빠가 잘못했다."
감추어 두었던 슬픔을 들켜 버린 양 떨어지는 눈물줄기를 감출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던 나는 화장실을 간다며 잠시 그의 곁
을 떠나 진정하는 시간이 필요 했다.
"다음 사연은 가족을 찾아 미국에서 왔는다는 사연을 소개 하겠
습니다. 이름은 '앤 브라운' 올해 27살로 현재 뉴욕에 살고 있고
가족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앤 브라운" 양과 그녀
를 잘 길러주신 양어머니 "제인 브라운"씨를 소개 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앤의 엄마인 제인 브라운입니다. 앤이 이번
기회에 가족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3
그리고 TV 화면에서는 "엄마 보고 싶어요."라는 서투른 한국말이
튀어나오며 화면 가득히 울먹이는 앤의 얼굴이 크로즈업 되어 채
워졌다.
"나는 1978년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어요. 가족에 대한 기억은 전
혀 없고, 엄마가 보관해준 기록에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고만 되
어 있어요. 이번 기회에 꼭 나를 낳아 준 엄마를 만나보고 싶고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어요."
동희와 동진이가 점심을 먹으러 학원에서 돌아오다 내가 울고 있
는 모습에 당황하자 그이가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던 나는 혼자 남아 있던 소파에 기대어 근 삼십년을
참았던 눈물을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 정신이 드세요."
동희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그 곁에 동진이와 그이가 있었다.
"아빠께서 다 말씀해 주셨어요. 엄마 이젠 울지 마세요. 엄마에게
우리가 있잖아요."
동희와 동진이를 껴안으며 영문도 모를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
하다는 생각을 했다.
24
"어서 옷을 입어요."
"........."
"방송국에 연락을 취해 놨어요."
"민영이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 아이에게서 민우가 보이지 않았소? 틀림없는 민우였어."
나는 앤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었다. 앤도 긴장을 하는지
진땀을 흘리며 자신이 찾고 있던 엄마인지를 무던히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때 제인이 가방에서 소중하게 싸두었던
배냇 저고리 같은 것을 꺼내 들어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오~~ 하느님~~ 민영아~~ 민영아~"
나는 미칠 듯 달려가 그 때까지도 어쩔 줄 모르는 민영이를 온
가슴으로 안았다.
"엄마를 용서해라. 민영아! 엄마가 잘못했다."
제인이 꺼내든 빛바랜 옷에는 분명 자수실로 아주 조그마하게
성민영이라고 쓰여 있었고, 그것이 앤의 한국이름이라는 것을
통역하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민영이는 너무도 슬픈 눈으로 나
를 바라보며 "엄마 반가와요. 왜 나를 버리셨어요?" 하고 조용
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 했다.
25
"엄마! 그렇지만 나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있어요.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우리 모녀는 27년만에 재회 할 수 있었다.
그 날 우리 집으로 초대된 민영이와 제인에게 가족을 소개해 주
면서 아이들의 아빠가 민영이 아빠와 가장 친했던 친구라는 사
실도, 그 동안 오래도록 간직했던 상자와 빛바랜 편지도 그 날
처음 가족들 앞에서 공개 되었다.
편지를 받아 든 민영이는 에델바이스가 울려나오는 상자를 끼고
뜻도 모를 엄마와 아빠의 편지를 바라보며 나직이 소리 내어 흐
느꼈다.
"아빠! 누나에게 저 편지들 번역해 줄까요?"
그이는 동진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인의 양해를 구하고 그 날은 안방에서 민영이와 단둘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민영이가 태어나 단 한 번 안아 보지도, 아이의 냄
새 조차도 맡아보지 못했던 것이 언제나 가슴에 사무쳤는데 이젠
스물 일곱 적지 않은 나이의 민영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26
"엄마!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요. 나는 엄마가 아직 살아 나를 만
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어릴 적엔
몰랐지만 열두 살이 넘으면서 항상 나와 같은 피부색의 나와 비
슷하게 생긴 훌륭한 엄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뜻 모를 이야기를 슬픈 눈으로 내게 말하곤 민영이는 내 품에 파
고 들며 오열을 하고 있었다.
"민영아! 엄마를 용서해라. 그리고 미안하다. 자식을 버린 엄마이
기에 받아야 하는 고통으로 나는 너와의 이별 후 단 한 번도 너
를 잊은 적이 없이 언제나 가슴속에 너를 품고 살았다. 미안하
다. 민영아!"
"엄마! 나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있어요. 엄마가 나를 버려야 했다
면 충분한 그럴 사정이 있었을 꺼에요."
"민영아! 엄마를 용서해라. 민영아!"
그렇게 우리 모녀는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도 뜻만은 서로의 눈을
통해 주고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섯 명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아침식사를 하며 부두를
넣은 된장찌개와 계란오물렛 그리고 불고기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끼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27
"언니 어디 살아?"
"뉴욕"
"우리는 쌍둥이야. 언니의 동생이기도 하구."
"누나! 나 어제 밤을 꼬박 새워서 누나에게 줄 편지들을 번역 했
어. 누나를 만난 기념으로 주려고."
"고맙다. 난 내게 이렇게 한국동생들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희들을 만나서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난 너희들에게 줄 선물
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니?"
"언니! 우리에게도 언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선물
은 언니가 바로 선물이라고 생각해."
"된장찌개도 먹어 보렴."
서투른 젓가락질이 안쓰러워 수저로 비벼서 먹을 수 있는 된장찌
개를 밥에 비벼 먹어보라고 했지만 냄새를 킁킁거리던 민영은 도
저히 못 먹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기하자 아이들이 나서서 오물
렛을 대신해서 먹으라며 우리는 만남 후 처음으로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요일 아침을 맞는 우리
집에 또다시 이별의 순간이 다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28
호텔에서 잠을 잔 제인이 누르는 초인종 소리......
"어서 오세요. 제인"
"안녕하세요. 좋은 밤을 보냈어요?"
민영이 다가가 제인에게 입맞춤을 했다.
"우리는 오늘 오후4시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어요. 그래서 11시에
는 공항으로 출발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민영에게서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또
다시 이별을 해야만 하나 싶어 민영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그러
다가 더는 참기 힘들어 안방으로 도망치듯 달아나 침대에 엎드려
숨을 죽여 가며 눈물을 쏟았다.
그이가 조용히 다가와 나를 감싸 안았다.
"여보 이제 그만 하구려. 이젠 당신이 슬퍼하며 지내지 않아도 될
일이 눈앞에 이루어져 있고, 삼십 년을 기다린 당신이니 너무 슬
퍼하지 말고 웃는 낯으로 민영이를 보내줍시다."
공항까지는 온 가족이 함께 가기로 했다.
은주언니, 은경이, 그리고 세번째 민영이와의 공항이별이었다.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겠니?"
29
"엄마! 나는 지금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시간이 되시
면 아빠와 동생들을 데리고 와 주세요. 저도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은 서울의 가족들을 찾아보도록 노력 할 께요."
"언니! 어제 밤에 동진이와 둘이서 밤을 새워 번역을 해 놓았어.
언니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어."
동희가 번역된 편지들을 민영에게 전했다.
"이것은 이제 네 것이다."
아이에게 오래 전에 받아 들었던 에델바이스가 흘러나오는 보석
함을 전 해 주었다. 아이는 애써 참으려하는 붉은 눈을 가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잘 가거라 민영아~~”
웃으며 아이를 떠나보내고 있었지만 내 곁에는 그와 동희, 동진이
의 따뜻한 마음과 손이 남아 있었다. / 끝
30
====================================================================
저자 프로필
독고 철 1955년 서울생
서울 무학초교 집필 서적
광희중학교 1. 살아볼수록 괜찮은 여자
세종고교 2. LA FRIEND
국민대 토목공학과 졸 3. 완전한 사랑
ROTC 전역 4. 꿈꾸는 허수아비
2013년 11월 현재 삼환기업 임원
'창작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한 사랑" 7부 (0) | 2013.11.12 |
---|---|
"완전한 사랑" 6부 (0) | 2013.11.12 |
"완전한 사랑" 5부 (0) | 2013.11.12 |
"완전한 사랑" 4부 (0) | 2013.11.12 |
"완전한 사랑" 3부 (0) | 2013.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