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108사찰

독고철 6차 대구-경북 천년사찰

독고철 2018. 11. 15. 17:41

 

 

독고철 6차 대구 경북 천년사찰
(2018.11.07.-11.10)

 
2018년 7월 시작한 한국불교 108사찰 순례도 벌서 6회째를 맞이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새삼 느끼며 함께 해준 친구에게 고마움 그 이상의 감사를 드리고 싶다.

 

6차까지의 경과를 정리해 보면 2018년
1차  7.17-7.22    전남         13개사찰
2차  8.01-8.08   전북 & 충남  14개사찰
3차  8,15-8.18   충남 & 경기  11개사찰
4차  9.27-10.01  부산 & 경남  11개사찰
5차  10.21-10.24 경주 & 경북  10개사찰
6차  11.07-11.09 대구 & 경북   9개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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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개사찰

 

사찰순례 준비과정과 포인트를 되돌아보면 
첫 번째는 오랜 시간 계획하고 실천하며 동고동락할 마음이 맞는 동행자를 찾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순례사찰 108개 선정 및 철저한 사
검토를 통해 차량이동 거리를 최소화하고, 1회 분량을 정하여 일정 짜기 잘해야 한다.


세 번째는 여행 중 여건에 따라 수시로 일정을 검토 수정하고 잠자리는 적어도 4시간 전에는 예약확정하고 이동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네 번째는 기록을 남기는 문제이다. 사찰순례 20개를 넘기면 머리의 한계인지 무엇을 보았
는지 큰 사찰이 아니고는 도무지 머릿속에 리되지 않고 현장의 감동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먹기 나름이지만 역시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동행자와 코드 맞추기가 아닐까싶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까 마는 오랜 친구와도 여행의 횟수와 시간이 길어지면 일정관리, 음식문화, 자는 습관, 숙소 등 사소한 모든 일에 이견과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행복한 필자 6차 순례를 마치며 한 번도 다툰 일이 없으니 이 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그것의 근본은 양보와 아량 그리고 우정이 아닐까 싶다.

 

이번 6차 순례는 대구와 구미지역, 그리고 해인사까지로 잡았다. 팔공산을 중심으로 근접하여 사찰들이 산재해 있어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6차례 순례기간 중 유일하게 전 일정 우산을 받쳐 들고 산사를 돌았다.

안개 자욱한 산사에 가을비는 인적을 끊어 버렸고 비바람에 날리는 낙엽 속을 걷으며 지금고궁이나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처마 밑, 낙수를 손끝으로 느껴 볼 수도 있었다.

가을이 떠나고 있음이다. 

 

 

 

 

 

 

60. 도리사 (구미선산)

 

신라최초의 사찰
적멸보궁 :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
건립시기 : 신라 눌지왕 서기440년
고구려 아도화상 창건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dlek.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과 부처님 사리
1과 (직지사 위탁 보관), 보물470호인 화엄석탑dl dlTek.

 

고구려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했다고 한다. 신라 사찰들이 대부분 산 아래 위치 한 것과달리 산 정상부에 자리 잡아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불상이 없다. (거울 바깥부분에 부처님 진신사리탑 있음)

 

진신사리

산곡대기에 있어 절경이다

 

추남 잘 지내셨나?  멀리서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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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해운사 (구미시 금오산)

 

건립시기 : 신라말 도선국사 창건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dlek.


금오산(977m) 정상부 암절벽 밑에 자리 잡은 사찰로 도선국사가 도를 닦은 도선굴이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되었다. 화마로 복원된 지 7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탓에 찰의 기운이나 규모면에서 적으나 범상치 않은 사찰임에 틀림없다.  

금오산 정상부에 해운사가 있어 케이블카를 타야한다

 

자 케이블카 타고 오릅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있다 (왕복 8000원)공간도 협소하고 대부분 신축 건물이다

 

자그마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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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파계사 (대구 팔공산)

 

건립시기 : 신라 애장왕 서기 804년 심지왕사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보물 제992호 목조관음보살좌상
조선 임금위패 : 선조, 숙종, 덕종, 영조
조선 임금 어필 보관 : 숙종, 영조, 정조


10여 년 전 팔공산 종주시 가보았던 파계사가 아니었다. 다른 대형사찰처럼 새로운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고 예전에 음산한 사찰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주문

대구쪽으로 오면서 불상 얼굴이 풍부하고 수염이 가냘프다

신축 불당에 있는 서까래로 총 7개가 있으며 가로세로 1.2m의 통나무를 켜서 올렸다.세월이 지나면 후손들이 혀를 두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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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동화사 (대구 팔공산)

 

건립시기 : 신라 소지왕 서기493년 극달 창건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불렀다고 한다
유정 영남도총섭이 승군을 지휘하였던 곳으로 의병들을 모집 훈련시키는 호국의 본거지
보물 제244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247호 삼층석탑,
보물 제243호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254호 당간지주,
보물 제601호 대구 도학동 승탑,

 

사찰 입구

대웅전

대구 -경북 불상 모습이 거의 유사하다

동화사 산아래길로 300m 내려가면 근래에 건설된 거대한 석물이 있다.  계단등은 대표적 부실시공작품으로 외국인이 본다면 웃고 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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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갓바위와 선본사 (대구 팔공산 관봉)

 

갓바위

 

건립시기 :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 추정
조계종 직영사찰
보물 제431호. 팔공산 관봉 (850m)꼭대기에 5.48m 크기의 석조여래좌상. 불상과 대좌가 하나의 돌에다 조각되어 있다.

 

새벽 3시30분 합격 소원성취를 이루어 준다갓바위에 오르는 날이었다. 갓바위가 있는에 오르는 방법은 2가지 길이 있는데 영본사 쪽에서 오르는 것이 수월하다 .이 길은 필자가 대구에서 현장소장을 하던 2007현장이 안전하고 무탈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며 2년 동안 50번 이상 올랐던 길이 아닌가 싶다.

 

갓바위 오르는 초입

 

 선본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짙어서 20m 앞을가늠 할 수 없는 안개와 빗속에 낯익은 비탈길과 계단길을 3시40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작에서부터 갓바위 정상까지 2m 남짓 간격으로 석등이 좌우에서 불을 밝히고 비탈면은 새로 콘크리트 포장으로 나머지 급경사 길은 전 구간 새로 돌계단을 깔아 합격을 기원하는 불자들의 성지

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십년 전에는 힘든 줄 모르고 단숨에 오르던 길이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쉬엄쉬엄 갓바위에 도착한 것은 4시15분이었다. 35분이 소요된 셈이다.

 

어둠과 안개 그리고 빗속에 갓바위는 조명으로 흐릿한 형상을 한 채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그 시간에도 비닐로 몸을 감고 밤을 꼬박 세워가며 소망을 비는 적지 않은 불자들은 영하에 가까운 기온과 흩날리는 비바람, 몸 속을 파고 드는 한기를 오직 불심으로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 부산과 더불어 여인들의 불심이 가장 깊은 지역 중에 하나라고 한다.

 

갓바위 

갓바위 30m쯤 아래 위치한 법당으로 이른시간에도 스님 두 분이 신도들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남은 생은 해탈과 중용의 마음으로 후회없이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갓바위 부처님과 작별을 고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5시에 선본사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빗속에 급경사 계단과 비탈 내리막 길은 오르내리는 시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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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


건립시기 : 신라 소지왕  서기 491년 극달 창건 갓바위를 관리하는 사찰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불밝힌 법당 규모가 작은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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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은해사 (대구 팔공산 영천)

 

건립시기 : 신라 현덕왕 서기 809년 혜철국사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조선 인종 태실을 봉하고, 숙종 때는 은해사를 종친부에 귀속하는 등 왕실과 관련이 있는 대구지역의 가장 큰 사찰이 아닌가 싶다. 국보 제14호의 거조암 영산전, 보물 제486호인 수미단,보물 제514호인 금동보살좌상 등이 있다.

대웅전 

불상 모양이 역시 대구 경북지역이다. 왕가  관련 사찰로 위엄도 있고 규모도, 절제도 있는 대형사찰이다

대웅전 뒤편 석축으로 우리나라 사찰 석축중이렇게 정교하게 쌓은 곳은 처음 보았다.마치 조선의 궁궐석축 같았다.

왕가와 관련있는 사찰은 계단돌, 축대까지도 석공에 의해 다듬질된 돌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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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거조암 (대구 팔공산 영천)

 

창건시기 : 신라 효소왕 서기 693년 원효대사  또는 신라 경덕왕 왕명으로 창건 설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의 암자.
국보 재14호 영산전


거조사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도록 불상 앞에 커튼이 쳐져 있다. 불당에 들어가면 커튼 뒤로불상이 있고 특이하게 법당 안에 오백나한상이 가득 차 있다. 나한기도도량이다.

 

국보 재14호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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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용연사 (대구 달성군)

 

건립시기 : 신라 신덕왕 서기 912년 보양선사
적멸보궁 진신사리 극락전 본당에 존치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이며 보물 제539호 조선시대 부도가 있다.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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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해인사 (경북 합천)

 

건립시기 : 신라애장왕 서기802년 순응과 이정이 창건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우리나라 3대 사찰 :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팔만대장경판 봉안한 법보사찰로 고려의 태조는 국찰(國刹)로 삼았다.
1398년(태조 7)에는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대장경판(국보 제32호, 국보 제52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3

(국보 제265호), 74권 (국보 제279호),
고려목판 (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264호),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518호), 
 원경왕사비 (보물 제128호), 
 건칠희랑대사좌상 (보물 제999호), 
영산회상도(보물 제1273호)등 보물이 다수 있다.

 

 

일주문

대웅전이다. 해인사는 고려, 조선의 왕가와 관련있는 사찰로 범상치 않은 점이 많았다.

 

통도사에서 난생 처음 아침 예불에 참석해 1시간 넘게 진행되는 성대한 의식을 보면서 (필자의 4차 순례기 참조) 느꼈던 전율을 다시 한 번 법보사찰인 해인사에서 느끼고 싶어 전날 갓바위 새벽 참배에 이어 3시30분부터 부산하게 직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통도사는 부산, 양산, 울산,김해 등 대도시에 인접한 대형사찰이라는 점비해 해인사는 합천의 가야산 깊은 계곡에 자리한 대형사찰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사찰의 규모를 어림잡아 비교하면 해인사는 도사에 비해 작아 보이질 않았고 전날 늦은오후 빗속에서 돌아 본 그곳에는 우산을 든 은 신도와 국내외 관광객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가히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해인사위상을 보고도 남음이 있었다. 부지런을 떨며 4시 정각 사찰로 가는 자동차 길이 열리는 초소 앞에서 기다렸다. 입구가 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함은 그곳에 우리 차 외에는 기다리는 차가 하나도 없었다.   마침 차 한 대가 어둠속에서 사찰로 오르는 것보고 우리도 뒤따라 어둠속으로 달렸다.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향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둠속에서 앞차만 보고 달려야 했다.

 

4시면 통도사에서는 거대한 범종이 타종을 시했는데 해인사는 어떤 아침 예불의식으로 필자의 기대를 채워주게 될까?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이 정도 규모의 사찰이면 스님이 백 명 쯤은을 터이고 그 분들의 아침 예불 모습을 머릿 속에 그리면서 0도에 가까운 선선함 속에 우산을 받쳐 들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 앞에는 스님 한 분이 합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정확히 4시가 되자 범종 소리 없이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의 염불소리로 산사를 깨우는 듯했다. 스님은 염불을 하며 대웅전을 두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웅전 안에는 여신도 댓 명이 아침예불을 기리고 있었다.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해인사의 예불을 기다렸다. 통도사는 스님들의 방석이 100개는 펼쳐졌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웅전에 스님방석은 20개가 채 되질 않았다.

 

4시30분 스님들이 한 분 두 분 법당에 모여들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면 13분의 스님이 아침예불을 시작했다. 통도사에서 지켜 본 의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식을 치루는 스님들 몸 동작도 자유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도 잠시 시작하는가 싶던 예불은 딱 10분 만에 종료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며 어쩌면 오늘 본 의식이 대부분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아침예불이 아닐까 생각했다.

 

종무소에서 사찰 도장을 받았다

 

이번 6차 순례는 함께 간 친구의 사업상 문제김천 직지사와 영동 영화사 순례는 내년으로 미루었다. 정말 시작이 반이라고 108사찰 중 68개소의 사찰순례를 마쳤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108 사찰....2018년 사찰 순례를 마감하며 독자 여러분도 좋은 친구와 사찰 순례 나서 보시라고,  그 만한 행복과 보람이 없었노라고 권하면6차 순례보고를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