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독고철 - 곽방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6부

독고철 2015. 7. 2. 16:35

 

 

독고철 곽방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6

 

 

 

안나푸르나 용감한 9인의 한국인

 

 

2014.12.27 (6일차)

   

숨이 차서 곧 죽을 것만 같던 밤을 지새우며 날이 밝으면 하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다행이 나는 2013년 코타키나발루에서 잠자리 고산증 경험이 있어 견딜만 했지만 추남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고산증에 30분이 멀다하고 벌떡 잠자리를 박차고 앉아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잠자리 고산증은 어떤 느낌일까?

전날 10시간 가까운 산행과 며칠째 계속되는 강행군에 온 몸이 녹초가 되어 골아 떨어질 것 같은 잠자리에서도 4000m 가까운 고도의 기압차에 의한 폐 기능저하산소부족에서 오는 전신의 괴멸감 (정신은 있는데 온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느낌이랄까?) 자다가도 당장 눈을 뜨지 않으면 다시는 세상을 못 볼 것 같은 괴로움과 공포감이 수면 중 고산증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자존심 강한 추남은 죽는 인상과 가뿐 호흡을 하면서도 “괜찮냐?”고 묻는 내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견딜만 해.”라며 술에 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마도 전날 내가 고산증으로 헤매지 않았으면 벌써 자리 펴고 누웠을 지도 모를 사람이 그 질긴 정신력으로 내숭을 떨며 버텨내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며 만난 세상은 달빛 없는 밤이었지만 별 빛만으로도 차갑고 음산한 거대한 어항 속에 내가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추남에게는 무엇이든 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인데 전날 고산병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도 아쉬웠다컨디션이 살아나 더 높은 곳까지 갈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도 해보고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길을 빠르게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매서운 찬 기운은 그런 호사스런 생각을 오래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다수면 중 고산증이 두렵고 온기 하나 없는 얇은 스폰지가 깔린 나무침대에 보온물주머니가 있는 스리핑백 속에 들어가는 것이 해결책이다 여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굿모닝보스 오늘은 일찍 일어나셔야 해요.” 새벽 430분이 되자 따끈한 밀크 홍차가 배달되었다. 아마도 밤새 고통스런 밤을 지샌 후 트레킹 기간 중 가장 행복하고 맛있는 달콤한 홍차가 아니었나 싶다부지런히 침구를 정리하여 카고백을 꾸려 포터들이 지고 출발할 수 있도록 하고 530분에 아침식사를 했다이 아침식사를 위해 주방팀은 짐작컨대 4시부터는 준비를 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당일 일정은 고도를 확 낮추는 날로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를 6시에 출발하여 MBC3700m  데우랄리 3230m - 시누와 2360m - 촘롱 2170m로 이동하는 날이다올라올 때 촘롱에서 MBC까지 2.5일이 걸렸는데 내려 갈 때는 1일 만에 하산하는 셈이다.

 

일행 모두 지난밤이 싫었는지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산 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삼삼오오 길을 나섰다출발시 MBC 온도는 영하 8도였다가이드 조언대로 가을 복장으로 출발했고 다행이 눈이 쌓여있지 않아 아이젠은 필요 없었다. (눈이 쌓여 있으면 당연히 필요함)

 

MBC에서 하산시 육체적으로는 정상 컨디션이었으나 지난밤 고산증의 여파인지 시선의 초점이 흐리고 머리 멍한 기운이 있었다그러나 정점을 돌아 집으로 간다는 희망을 담은 가벼운 발걸음에 고도를 낮출수록 증세는 완화되어 데라울리에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정상처럼 되었다.

MBC에서 하산 길 첫 번째 롯지인 데라울리의(3230m) 온도는 영하 4도였다그곳 다이닝 룸 가장 좋은 곳에 회사의 프랭카드를 영구 게시했다언젠가 후배들이 그곳을 찾으면 선배의 발자취를 느껴 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산 길은 단체 이동이 아닌 개인능력별 소그룹 단위 이동으로 고도를 높이는 트레킹이 아니기에 고소증보다는 기본체력이 중요했다점심이 예정된 밤부에 5시간이 지난 11시경 도착했다. 영하의 날씨는 간데 없고 햇빛을 받아 영상8도의 푸근

한 날씨가 되었다.

 

 

  무자비한 돌계단 하산에 추남은 무릎통증이 시작되었다.

 

 트레커 상황에 따라 말을 타고 이동 할 수도 있다. 250$

 

고산증으로 산행을 중도 정지하는 일행도 있었다. 결론은 나이 순으로 트레킹중 60을 넘긴 사람들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보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젊어서 도전하야 하는 이유이다.  

 

하산여정의 약 60% 위치인 촘롱에는 15시경 도착했다MBC에서 9시간만에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오니 정상의 호흡이 제일 반갑고 2300m에서 샤워를 해도 된다는 것이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다. 200루피 우리 돈으로 2000원을 주고 더운물로 1주일 만에 샤워를 했다이곳 더운 물은 태양열로 물을 데워 하루 20명 제한으로 할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일행들은 목표을 달성했다는 만족감과 설산에서 벗어나 내일이면 도시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들 행복해 했다.

 덥수룩한 수염세수도 제대로 않고 살았던 지난 며칠 동안 실제 가보지 않고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만년설의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 고봉들과 함께 했고,밤이면 어둠속에 한 점으로낮이면 설산으로 향하는 노새가 되어하늘을 막고 선 하얀 설산에 달라 붙은 개미 한 점으로 살아야 했다.

 

자그마한 두 발로 수만 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4200m 높이까지 평생 동안 되새길 벗과 함께 추억을 간직하니 더 이상 욕심 낼 그 무엇이 남았던가?

 

  

 

 거의 맛이 가버린 상태이지만 행복했다샤워와 면도를 하고 맥주 한잔 붉은 얼굴에 노숙자는 면했다

 

샤워 전 콧수염 늘어진 노숙자와 다름없는 추남

 

 

그곳에서 그 동안 수고해준 카라반 팀에게 일행들이 약간의 돈을 (1인당 30모아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그리고 이번 트레킹을 위해 준비했던 물품중 남은 대부분의 물품을(식품그들에게 남겨 주었다. 나와 몇몇은 서울에서 유행지난 등산복을 세탁해서 가지고 가 그들에게 전달했고 추남은 연필과 크레볼펜을 지고와 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내일 하루 4-5시간을 걸으면 트레킹 일정이 끝난다일행들은 긴장을 풀고 酒鬼 추남을 필두로 참았던 술잔을 부딪치며 특식으로 나온 염소고기를 안주로 창밖에 어둠이 깊어 질 때까지 기쁨을 나누었다

 

 

2014.12.28 (7일차)

 

전일 늦은 시간 가이드가 방문을 두둘겼다포크라에서 일기불순으로 비행기가 뜨지 않을 것을 대비해 하산 당일로 카투만두에 도착하도록 일정이 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당초 일정은 포크라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있는 호수에서 보트 놀이를 할 예정이었고 1박 후 내일 카투만두로 이동하여 귀국 길에 오르는 스케즐이었다만약 스케즐 변경이 어려우면 비상시 포크라에서 카투만두까지 현지버스를 타야 한다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날 일행 모두는 부지런을 떨며 430분 기상하여 아침식사 후 헤드랜턴을 켜고 어둠과 침묵에 싸인 촘롱을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일념으로 기분 좋게 6정각 출발했다. 정상 목표를 두고 산에 오르는 것도 힘이 들지만 오르내림에 관계없이 도시로 간다는 거대한 산허리를 가르는 그늘 한 점 없는 기나긴 길을 장시간 걷는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 아래로 내려올수록 온도도 높아졌고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마당 한가득인 롯지들도 있었다.

 

 

TV 세계여행 차마고도편에 나오는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인 산허리 길이 그곳에도 있었다사진을 남겨 두었어야 했는데 새벽에는 어둠이 가렸고 나중에는 카메라를 꺼내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왜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설산을 대하고 나면 세상의 모든것이 허접해 보였기 때문이다.

 

촘롱 2170m - 뉴브리지 1340m - 치무릉 1130m까지 다들 지친가운데 바쁜 걸음으로 4시간30분 걸어 산골 짚차가 닫는 치무릉에 무사히 안착 했다치무룽에서 추남이 일행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 캔씩을 사서 돌리며 트레킹 성공 자축연을 벌렸다며칠간의 고행 끝이라서인지 취기가 빨리 오름을 느꼈다.

 

주방에서 점심으로 비빔냉면이 나왔다히말라야 이름 모를 산골마을에서 한국산 팔도비빔면을 점심으로 먹는다는 일이 상상이나 될 일인가세상은 이만큼 하나가 되어가고 무엇보다도 부강해진 한국인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새 정이 들었는지 어린 스텝들과 이별이 아쉬웠다.얘들아잘살아라할 수 있다면 꿈을 가지고 항상 각하고노력해서 보다 나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프지들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정들었던 더 솔직히 안쓰러워 보였던 포터들과 일행 9

  

한국인과 같은 맛을 내는 주방장을 격려했다 

  

 
이 차를 믿어도 되는 것인지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카라반 대장 가이드 "가델" 에베레스트에 오른 경력의 세르파 족이라고 했다

 

 

포터 아이들의 환송 속에서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짚차에 몸을 실었다솔직히 이런 고물차를 믿을 수있을까 생각이 많았다먼지가 차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비포장길을 시속 5-10km의 거북운행으로 1시간 달려 트레킹 체크장소에 도착했다. 하산 신고 하고서야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길로 나설수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중앙선도 없는 길을 1시간 30분 달려 포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끝낼 수 있었다.

 

 / 6부 끝

 

 

포크라 공항 라운지에서 바라본 설산 마차푸차레봉이 앞에 있고 안나푸르나 고산군이 둘러싸고 있다

 

안나푸르나 산군 일부

  

마차푸차레봉

 

  

 

영원한 해병 추남

  

우리는 저 설산의 중간까지 올라가서 만년설을 보았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