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100대 명산오르기
1. 1 일차 (2013.10.3)
드디어 그 날이 왔다. 4시부터 몸을 풀며 새롭게 맞아 할 앞으로의 며칠을 생각했다. 2013년 10월3일부터 10월6일까지 3박4일 동안 필요한 짐들을 다시 한 번 첵크하며 바쁜 시간을 가졌다.
6시 정각! 여행의 출발점인 용산역을 향해 집을 나섰다. 7시 20분 발 목포행 KTX 열차를 타고자 함이다. 징검다리 연휴라 예상은 했지만 도착한 용산역에는 나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같은 시간의 열차를 기다리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병을 사들고 여유롭게 예약한 자리에 도착했다. 어쩌자구 그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어여쁜 스물 처녀가 내 짝지가 되어 생각지도 않는 목 인사와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이 나이 되도록 남녀칠세부동석이 국기인양 여기는 목석같은 이 나라에 살면서 초면에 젊은 처녀가 반갑게 미소와 목례로 아침 인사를 하며 나를 맞아준 기억이 있었나?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2013.10.03 그 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식사로 테이블에 빵과 우유를 놓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두툼한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교양이 있고 남을 배려하며 어른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처녀가 또 있을까? 싶어서 은근한 관심 속에 지켜본 그녀는 모든 면에서 괜찮아보였다.
아직 결혼을 할 나이는 아닌 것 같고 검정 뿔테 안경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많아야 스물 두셋의 수수하게 생긴 이 처녀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 속담 같이 꽤나 호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런 처녀라면 교육정도나 가정 환경등 일체의 조건과 관계없이 건강하다면 필자와 함께 사는 32, 28살 아들의 짝으로 맞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정도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면 처음에 부모덕에 잘 시작한다고 해서 중년 이후까지 풍요롭게 산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라는 점과 살아볼수록 가정교육과 교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원하는 며느리 스타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상념도 잠시 그날따라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이 부담이었던지 열차가 광명역에 도착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잠에 빠졌다. 열차는 평택평야를 지나는 듯 싶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황금빛 들판엔 이른 벼들을 수확하는 콤바인들이 점점이 박혀 바리깡으로 금발머리를 밀어 내 듯 바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이거 좀 먹어 볼래요?”
아침으로 준비해 왔던 도너츠 3개중 1개를 그녀에게 들이 밀었다. 당황해 하는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고맙지만 자기는 아침을 먹었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녀의 발음이나 태도로 보아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아니었고 미국인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가 영국에 입양된 한국인으로 태어난 곳을 느껴 보기 위해 여행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괜한 이야기의 진전으로 이야기가 길어지면 아침 기차에서 제일 교양없어 보이는 승객이 되겠기에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이 어려보이는 그녀가 언행에서 정중하고 신중한 태도보이는 의젓한 모습을 보며 영국이 저렇게 그녀를 가르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양부모가 저리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뜬 곳은 정읍이었다. 몇 년 전 평야지대에 있는 이곳 정읍의 내장산을 우습게생각하고 산행했다가 초겨울 진눈깨비를 맞으며 매운 맛을 단단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목적지인 장성이 가까워졌다. “한국에서 좋은 여행 되세요.” 그녀와 마지막 인사는 짧은 영어로 그렇게 나누었다.
장성역 홍길동 마스코트 앞 (배낭과 필요한 옷들을 넣은 가방 1개가 전재산)
장성을 차량렌트 시발점으로 택한 이유가 있었다. 첫 째 홍길동의 고장 전라남도 장성에서 땅 끝 해남군으로 이동해서 두륜산과 달마산을 오르고, 다시 장흥군으로 이동해서 천관산에 오른다. 고흥군으로 내려가 팔영산에 오르고 그길로 광양시에서 지리산 쪽으로있는 백운산을 오른다. 마지막 날 순천의 조계산을 오르는 일정을 소화하는데 시점과 종점 고려시 장성이 제일 적합했다.
7시20분 용산을 출발한 열차는 장성역에 10시에 도착했다. 연계해서 차량으로 갈아타고 네비게이션으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해남으로 출발했다.
이번 전라남도 100대 명산 산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서울과 너무 먼 거리에 위치해서 산악회를 이용할 경우 버스 안에서 보내는 왕복시간이 쉽지 않고 (통상 순수차량 왕복시간 9-10시간)다음 날 출근해야 할 경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산행과 이동, 숙식을 해결해야 하므로 나름대로 원칙을 정하고 출발했다. 첫 째 운전은 초행길이므로 규정 속도를 지킨다. 야간에 이동을 자제한다. 졸리면 쉼터에서 무조건 잠을 자고 간다. 둘째 산행은 속도전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등산에서 하산완료시까지 휴식 없이 전투산행으로 진행한다.셋째 식사는 산에서 하지 않고 비상식만 휴대 한다.
해남군 두륜산 (672m) 100대 명산
2013.10.3 13시 해남 두륜산 입구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주차비와 관람료 5000원을 내고 호남 4대 사찰인 대흥사로 들어섰다.
호남의 4대 사찰이라 함은 두륜산 대흥사, 조계산 송광사, 팔영산 능가사, 지리산 구례의 화엄사이다. 처음 대하는 대흥사였지만 훌륭한 입지와 사찰의 규모면에서 또 미적인 형태에 있어서 호남이 아닌 우리나라 대표 사찰로 손색이 없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대흥사라는 큰 사찰 안에 표충사라는 작은 절이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이유로 사찰안에 또 다른 사찰이 있을까 의아해 하며 표충사를 둘러보았다. 표충사는 왕의 명으로 임진왜란에 공을 세웠던 서산대사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었다. 그래서 왕이 하사한 현판을 달고 대흥사에서 표충사를 아니 서산대사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 개념의 사찰이 하나 더 있었던 셈이다.
대흥사 입구에서 두륜산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대흥사에서 써 놓은 안내문을 보면 마치 두륜산이 부처께서 누워 계신 형상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머리(두륜봉), 가슴(두륜산), 그리고 발(고계봉)모양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곳에 부처님이 누워 계신 듯 보였다.
두륜산이 머리, 중앙 두륜봉이 몸통 가슴부분이다
대흥사에서 두륜봉 (가련봉) 정상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참고로 모든 출발점은 표충사에서 시작한다. 표충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북암을 거쳐 오심재에 도달하고 여기서부터 모든 봉우리는 깔닥으로 가파른 길과 암벽으로 되어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여 첫 번째 봉우리인 노승봉의 밥상 같은 넓은 바위에 도착하게 되고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최고봉인 가련봉과 두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암에서 대흥사를 바라보다
오심재에서 노승봉, 가련봉을 바라다 보면 오심재 갈림길
남쪽 바다가 한 눈에 든다
정상부는 암봉이고 로프를 잡아야 한다
노승봉에 서다
노승봉에서 바라본 가련봉(두륜봉) 정상
정상에 오르면 잠시 바다와 함께 하는 다도해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다가 주변의 정말 미끈하게 뻗은 팔등신 산줄기의 아름다움을 가진 두륜산에 매력에 빠지게 되면 잠시나마 바다와 인접한 이 산을 와보지 않고 과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말 아름다운 산임에 틀림없다.
바다가 배경이다
제목 내 친구여 몽사 독고철
세상을 알고부터 간직했던
소박한 나의 친구여 !
억새풀 넘치는 산길을 지나
험한 바위길 마다 않고 오르면
잊은 듯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언제나 처음처럼 나를 맞는 내 친구 !
아기섬 품에 안고 수줍어 나를 맞는
먼 남쪽나라 쪽빛바다 같은 내 친구 !
내 오늘 두륜산 정상에 올라
소싯적 내 친구 멋적게 그리며
그리움에 먹먹해져 가슴을 쓰노라
또 다른 나였던 내 친구여!
두륜산 정상부 구름다리 (코끼리 닮았음)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급한 바위 길을 타고 한 참을 하산하다가 구름다리를 보고자 다시 두륜산에 올랐다. 어찌 보면 코끼리 같이 보이는 구름다리가 정상 가까운 가파른 절벽길 위에 모습을 들어냈다. 두륜산 정상에서 진불암까지 약간 가파른 하산길을 걷게 된다.
진불암을 거쳐 표충사 오른쪽 등산로로 내려왔다. 그래서 모든 등산로는 표충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주차장에서 대흥사를 거쳐 표충사, 오심재, 가련봉, 두륜봉, 두륜산, 진불암, 표충사, 주차장 구간을 14시에 출발하여 17시30분에 종료했다.
소요시간 3시간 30분이라고는 하지만 시작에서 종료까 지 사진 찍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산행한기록임을 참조 바라며 개인의 능력이나 기상 조건, 일행 여부등이 다르므로 시간에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다.
대흥사 명물 1000년 느티나무 연리근 "애정문제 소원 비세요"
해남 사파리
그곳은 사자와 호랑이 치타와 하이에나를 비롯해서 하마와 원숭이가 함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사파리에서 밤을 지새우겠다는 발상은 어차피 늦은 밤 도착해서 충분한 샤워와 안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벽에 기동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필자는 이 나이가 되도록 24시 찜질방이라는 곳에서 잠을 청해 본 경험이 없다. 관광지의 짬질방은 필자와 같이 외지 사람들이 저렴하고 (9000원) 조용하게 하루 밤을 보내고 가는 그런 곳이라고 상상하고 선택한 잠자리였다.
찜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저녁 해결을 위해 해남읍내로 나섰다. 건물들은 아주 오래된 듯 했지만 메인도로인 왕복 2차로 양 옆은 매장 규모가 꽤나 큰 고급 레져 옷가게가 줄을 대고 있었다. 육지의 타 지역 읍내 번화가보다 여유 있는 사람들 옷차림부터 음식점들도 시골식당이 아니고 번듯한 매장과 메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8시쯤 저녁식사를 위해 메뉴를 골랐다. 우선 물회가 갑자기 먹고 싶었으나 1인분 판매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정식집을 찾았으나 그곳 역시 1인분 판매는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도심이 아니다 보니 저녁 식사시간이 일찍 끝나 마감을 하는 단계에서 밥을 얻어먹기가 쉽지 않았다.
시내를 배회하다가 50년 전통이라는 식당에 들어섰다.
“아줌마 식사 됩니까?”
“몇 분이세요?”
“혼자인데요.”
“그럼 짱뚱어탕 드세요.”
간신히 그리 맛나지도 않은 짱뚱어탕으로 저녁문제를 해결했다.
해남읍까지 와서 잠을 청한 이유는 아침식사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을 준비하며 아침식사 문제의 해결방법은 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읍내로 가서 잠을 청해야 새벽에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벽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24시 김밥집을 확인해 두었다. 9시쯤 되어 시내구경을 마친 필자는 드디어 해남 사파리로 입장했다.
서울과 비교해서 시설면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목욕탕과 찜방이었다. 핼스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의자로 된 안마기에 몸을 맡겼다. 찜방에서는 10여명의 아줌마그룹이 TV 앞에 진을 치고 코믹프로를 보며 수다들을 떨고 있었다. 찜방에 가면 남자와 여자의 옷이 다르던데 이곳은 똑같은 색과 모양의 옷을 입고 있어 어두운 곳에서 식별은 장발 여부와 앞가슴의 돌출 여부로 식별을 해야 했다.
평시대로 11시에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었다. 뉴스라도 보면 좋으련만 TV를 끼고 앉은 아줌마들은 코메디 재방송을 보며 깔깔대며 좀처럼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새 사람들이 늘어 혼숙을 하는 그곳은 40여명의 남녀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 지 남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떠들고 수다를 떨며 소란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찜방에 잠자러 왔나?“라고 묻는 것 같았다.
01시가 되자 주인이 와서 TV를 껐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슬금슬금 잠자리를 찾아 눕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파리가 시작되었다.
밀림의 왕자는 역시 사자였다. 어찌나 코를 심하게 고는지 그 소리의 크기는 몸집과 비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도 있었다. 왜 그러는지 몰라도 정기적으로 자다가 갑자기 바닥을 두 손으로 내리치면서 큰소리로 잠꼬대를 하는가 하면, 너구리 마냥 어떤 아줌마는 시침 뚝 떼고 숨 넘어가게 잠꼬대와 이를 갈았다. 또 치타과 아줌마들은 잠도 없는지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 사이를 밤새 종알거리며 돌아다녔다.
11시부터 준비한 잠자리를 이곳저곳 조용한 곳으로 옮겨다니다가 1시에 수면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청하여 2시에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해 3시쯤 깨어났고, 다시 4시에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잠자기를 포기 했다. 찜방을 선택한 나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시부터 몸풀기 운동을 시작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찜방에 와서 새벽부터 체조하는 원숭이로 보였을 것 같다. 그렇게라도 몸을 풀어야 샤워를 시작하는 5시까지 찜방에서의 시간 때우기를 할 수 있고, 또 당일 오를 달마산과 천관산 하루일정을 소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보아두었던 읍내의 김밥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어둠속에 해남읍내를 빠져나와 40km떨어져 있다는 달마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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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2013.10.4)
해남군 달마산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달렸지만 어둠속에 초행길이라 시행착오를 2차례나 겪으며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둠속에 달마산이 주는 느낌은 높이가 470m의 작은 산이며 정상부는바위투성이로 보였다. 안내 책자에 종주는 6-7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으나 오후에 또 하나의 100대 명산을 찾아야 하는 필자로써는 지도를 펼쳐 놓고 달마산의 진수만을 맛보는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본격적인 산행들머리,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금샘방향으로 간다
어둠이 가시는 7시 정각 미황사 우측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산체가 작아 적당한 경사로 오르다가 바위산이 있는 곳부터 급경사를 이루리라고 예상했다. 산행 코스는 미황사에서 금샘, 문바위, 달마산정상, 미황사 코스로 3시간을 잡았으며 달마산의 진수는 그 구간 안에 모두 있었다.
능선에 오르자 바다가 인접해 있다.
금샘
첫 번째 바위능선인 금샘까지 40분 정도 소요 되었다. 그리 힘든 구간도 없었다. 금샘에서 문바위를 지나 달마산 정상까지 설악의 공룡능선을 축소하여 옮겨다 놓은 것과 같은 기암괴석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시선이 닿는 곳곳이 신령스러웠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빠져 진행을 거부한 채 새벽 서늘한 공기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묘하게 자태를 바꾸는 달마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암암봉을 통과 하면 멀리 정상에 석탑이 보인다.
달마산 정상에 서면 남쪽나라 다도해가 바로 산 아래이다. 정상석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누군가가 석탑을 쌓아 놓았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 혼자서 찍는 인증샷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인증샷하면 이런 일이 쯧즛 (10여장중 제일 잘나온 사진임)
기쁜 마음으로 진행했던 암봉을 뒤돌아 보며
정상에서 본 쪽빛 다도해
달마산에 오르며 “인연”이라는 화두를 정했지만 정작 너무 짧은 산행시간과 정신 차릴 수 없는 기암괴석들 감상에 젖어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버릴 것이 없는 것이기에 다음 산행지인 천관산에서 “인연”이란 화두를 계속 정하기로 했다. 하산 완료한 것은 산행시작 2시간30분이 지난 9시30분이었다.
하산해서 보니 그제야 남쪽에서 달마산을 넘어 햇빛이 든다.
미황사는 그리 유명세를 탄 사찰은 아니지만 나름 규모가 있어 보였고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마산의 신기가 넘치는 이곳에 국내에서 유명한 템풀스테이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스님을 말을 전해 들으며 “왠지 이 사찰에는 20-30대 젊은 스님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 그 이유도 템풀스테이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작지만 힘이 넘치는 바위산 달마산을 뒤로 하고 장흥군에 있는 100대 명산 천관산으로 향했다.
천관산 가는 길에 바라다 본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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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천관산 (723m) 100대명산
점심때가 되어 장흥군 천관산이 있는 관산읍에 도착했다. 천관산을 오르면 그 동안 섭렵했던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을 다돌아보는 셈이다.
삐쭉삐쭉 능선에 보이는 천관산 바위군이 멀리서도 특이하다
우선 허기진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냥 중국집에서 잡탕밥이나 짬봉밥으로 때우면 될 것을 잠도 많이 부족하고 피로도 느껴진다는 핑계로 고기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 산악회에서 코스로 잡는 장천재에서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하산하는 계획을 잡았다. 도로에서 바라본 천관산은 높이에 비해 산 채가 커 보이고, 바위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짐작해 육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이한 점은 길게 뻗은 능선에 공룡의 등비늘 처럼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장안사에 도착해서 그늘에 차를 세우고 보약 같은 30분 낮잠을 즐겼다.
13시 산행을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산채가 크게 보이더니 그리 가파르지 않은 대신 꾸준한 능선산행을 해야 했다. 1코스로 진행하다보면 2코스와 3코스의 능선부 바위군들이 보이기는 했어도 산림청이 정한 100대 명산으로 꼽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3코스 능선의 바위군
1코스 능선 중간- 코 끝에 땀방울이
산행 시작 1시간10분만인 14시10분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두륜산과 달마산의 경우처럼 남쪽은 그림같은 쪽빛바다를 배경으로 다도해가 펼쳐져 있었고, 북쪽으로는 천주봉까지 갈대숲을 이루는 전형적인 육산이었다. 아쉽게도 계절이 일러서인지 갈대는 만개를 앞두고 초록빛 덜 여문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왼손 끝이 현재 위치
제목 인연 몽사 독고철
나에게 너는 인연이었다
너에게 나는 인연이었나?
기쁨과 행복도 인연이었고
슬픔과 절망도 인연이었다.
새로운 인연이 나의 희망이면
지나간 인연은 나의 망각이다.
기약 없음도 숨겨진 인연이오.
떨치지 못함이 또한 인연이다.
환희대에서 하산하게될 3코스 능선
환희대를 거쳐 구룡봉까지 내달았다. 천관산 정상에서 환희대가 있는 천주봉, 구룡봉까지는 넓고 길게 덜 익은 갈대숲이 장관을 연출했다. 환희대에(천주봉 정상부 넓은 바위) 올라서면서 천관산이 왜 100대 명산인지? 왜 호남 5대 산인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통상 바위산은 두륜산과 달마산처럼 정상부가 통째 바위로 대부분 되어 있는데 반하여 천관산은 정상부가 아닌 산 상부 능선부에 하늘에서 석주가 뚝 떨어져 90도 각도로 꼽혀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는 무등산의 석주와 규모, 형태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컷으며 그 거대 바위는 산 아래에서나 옆에서 위에서 등 한 쪽 방향에서 바라보아서는 전혀 느끼고 예상 할 수 없는 신비함이 있었다.
모자에 허연 소금띠가 둘러졌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은 천관산의 1경은 하늘에서 내리 꽂힌 거대석주의 장관이요, 2경은 약 2km 펼쳐진 갈대밭의 넉넉함이고, 3경은 다도해의 차분한 포근함이며 1경 만으로도 100대 명산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3코스의 거대 석주를 돌아보며 원점회기하여 출발점으로 돌아온 시간은 16시 40분이었다. 13시 출발로부터 3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어제와 오늘 두륜산, 달마산, 천관산 3개의 산을 타며 공통점 있다면 그것은 바위의 질이 퇴적암이라는 사실이다. (고흥의 팔영산도 동일하였음) 이는 이 지역이 오랜 세월 전에 바다였으며 융기에 의해 산으로 돌출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퇴적 이암 계통의 바위는 야물지 않고 무르며, 화강암과 달리 미끄럽다는 특징이 있다. 비오는 날 미끌림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정말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눈이 풀리고 하품만 연속적으로 했다. 어둡기 전에 금일중으로 고흥읍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핸들을 잡았다.
고흥읍에는 7시30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중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왔기 때문이다. 낯 선 곳에서의 이방인 느낌을 즐기는 필자는 어제 밤 사파리에서의 하루를 생각하며 조용해 보이는 모텔로서둘러 잠자리를 정했다.
샤워를 마친 저녁 8시 넘어선 고흥읍내 분위기는 해남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침식사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포기를 하고 김밥집에서 2줄의 김밥을 준비해서 차안에 보관했다. 식당을 기웃대다가 해장국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돌아오는 길 슈퍼에서 캔맥주와 사과를 사들었다.적어도 이 밤 만큼은 깊고 포근하게 근심걱정 없이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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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고흥군 팔영산 (609m) 100대 명산
깊고 편한 잠을 잤다. 5시에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며 신체상에 문제를 점검한 결과 다행스럽게 어제의 무거웠던 피로가 씻은 듯 상쾌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해남 사파리에서 부족했던 수면시간과 오전과 오후 2차례의 산행은 오후 산행이 끝나갈 무렵부터 오른쪽 무릎과 왼쪽 발목 인대부분에서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차 안에서 아침뉴스를 들으며 지난밤 준비해 두었던 김밥과 편의점에서 구입한 커피, 사과 1개로 아침식사를 했다. 현재 위치에서 팔영산 산행기점인 능가사까지는 차량으로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산행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어제의 교훈을 새기며 능가사 도착을 7시 40분에 맞추었다.
이른 시간에 유료 사찰을 찾으면 주차료나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 날도 텅 빈 주차요금 정산소를 여유 있게 통과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기점은 능가사 정문(일주문)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 약5분 정도 차량으로 진행하면 또 하나의 주차정산소와 팔영산 군립공원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5분 거리 안내도 앞에서 산행에 대한 재검점을 했다.
이것이 팔영산이다
안내도를 기준으로 좌측으로 가면 1봉에서 8봉을 지나 깃대봉까지 통상의 산행코스로 진행하게 되고 반대로 우측으로 가면 8봉에서 1봉으로 역순 산행을 하게 된다.
흔들바위를 지나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두륜산, 달마산과 천관산, 팔영산과 같이 해안가에 솟은 바위산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산행입구에서 바위봉까지 그리 심하지 않은 경사로 진행하다가 바위봉 앞에 다달으면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과 암벽을 오르 내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팔영산의 제1봉 유영봉에 올랐다. 다행이 혼자 사진촬영에 애를 쓰고 있던중 6시부터 반대방향에서 올라왔다는 신혼부부를 만나 기념사진을 서로 찍어주었다.
1봉에
동쪽으로는 바다 넘어 여수반도가 남쪽으로는 쪽빛바다에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수놓 듯 담겨 있고 서쪽으로는 앞으로 넘어야 할 2봉부터 8봉까지의 사나운 모습에 바위산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2봉의 암벽을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우리나라 산중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잘 정비 되어 있으며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구비 해놓은 산이 있었던가? 고흥 군민들의 팔영산 사랑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아 고흥을 처음 와 보는 필자로써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2봉에서 8봉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구름 위를 나는 신선이 된 심정으로 산행을 했다. 사진으로 다 보여 주면 좋으련만 글로 써서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표현 할 방법이 없음을 탄식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덕유산 주봉 주변의 험한 바위산들 축소판이 8개씩이나 줄을 서서 바다를 배경으로 봉우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듯 자상하게 각 봉의 안내문이 있었음
지나온 암봉들을 돌아보며
6봉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절벽에 계단이 보인다.
드디어 8봉까지 도달!! 봉우리 마다 혼자 연출하는 인증샷을 한다고 용을 쓰다가 8봉에 이르러서 부산에서 왔다는 부부를 만나 모델이 된 기분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뒷배경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좀 더 팔영산을 느끼고 싶어 8봉을 지나 레이다 기지가 있는 깃대봉까지 내달았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팔영산의 맛이 또한 일품이었다. 팔영산을 가는 등산객은 깃대봉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꼭 가보기를 권한다.
깃대봉에서 본 팔영산 뒷모습
깃대봉에서 왔던 갈을 되돌아 8봉에서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오를 때와 정반대로 바위산의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가면 8봉의 바위산 뿌리부분 아래로 길게 생선 배를 가르듯 나 있는 그리 심하지 않은 하산길을 걷게 된다. 건강에 좋다는 우람한 편백나무 숲길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편백나무숲
등산 안내간판 오른쪽에 도착하면 팔영산의 산행은 종료된다. 8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해서 11시30분에 종료했으니 3시간 30분의 산행을 종료한 셈이다.
어제부터 돌아보았던 남도의 두륜산, 달마산, 천관산, 팔영산까지 이 준수하고 점잖은 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 크지도 않고 높지도 않지만 바다를 끼고 앉아 대한민국 어느 산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아름다움과 고고함을 간직한 명산들! 필자는 감히 이 4개의 산을 “양반과 같은 명산이다“라고 규정하고 싶다.
능가사 너무 초라하다. 옛 영화는 어디로 갔나?
되돌아 나오며 호남 5대 사찰에 하나라는 능가사를 둘러보았다. 팔영산을 배경으로 사찰의 입지는 필자의 눈에도 명당자리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두륜산의 대흥사나 달마산의 미황사, 천관산의 장안사에 비해 무슨 이유인지 사찰 터에 비해 건물의 수가 적고, 주재하는 스님들도 신도들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쓸쓸하고 조금은 소외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다가 급한 마음에 광양시에 있는 백운산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지난밤 충분한 휴식을 했지만 오전에 팔영산을 오른 여파인지 연신하품을 하며 졸음이 쏟아졌다. 휴게소에서 갈비탕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고 30분 오참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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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백운산 (1222m) 100대 명산
경험으로 보아 일단 1000m가 넘는 산은 산체가 크고 산행시간도 기본적으로 많이 든다. 오후 산행이다 보니 행여 일몰 후 하산할 경우를 대비해서 해드렌턴과 지도, 나침판, 비상식등을 꼼꼼이 점검했다.
들머리를 찾지 못해 도로를 수차례 헤매다가 예정보다 늦은 14시30분에 하백운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 계획은 백운사 입구 하단 용소에서 시작해서 하백운사, 상백운사, 정상, 진틀로 하산하는 5시간 30분 여정이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시간을 만회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마음을 조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하백운사까지 연결된 콘크리트 산길을 따라 차량으로 이동을 했다.
하백운사는 백운산의 정상으로 향한 기다란 능선에서 중간부분 해발 900m에 자리하고 있었다. 용소에서 오르는 것에 비해 시간상으로는 적어도 오르는데 1시간 20분, 하산에서 1시간, 더하면 약 2시간20분을 만회할 수 있었다.
하백운사
보이는 바다가 순천 여자만 왜? 여자만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서울의 도봉산과 백운대 정상 높이가 약 800m인데, 해발 900m에 하백운사가 있었다. 산행을 하며 약 1000m까지 계곡물이 풍부한 수량으로 흐르고 것을 볼 수 있었다. 신통한 일이었다. 그 정도 고지에서 계곡물이 흐르는 것을 본 기억은 대암산 용늪에서 넘친 물이 약 1000m 높이에서부터 계곡물이 되어 흐르던 것을 본 적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용늪도 없는 이 곳 백운산의 계곡물은 아마도 풍부한 수맥이 산정상부에서 솟아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이았다.
해발 1000m 계곡수....믿기 어렵다
오후 산행을 하며 오전 팔영산을 오를 때와 달리 오르막에서 체력이 떨어짐을 느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 홀로 길을 걸으며 “忍”이란 화두에 마음을 집중했다.
상백운사는 중간 능선에 있는 봉우리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좌우 커다란 산줄기가 광양을 향해 내리 뻗고 그 사이에 순천 “여자만” 해안이 정통으로 바라다 보이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은 암자였다.
우측 낮은 스레이트 지붕이 상백운사로 거대 바위밑에 쓰러져가는 암자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안내문에는 수도하는 스님들이 찾는 곳으로 사찰은 아니고, 반쯤 기운 오두막이며, 스님 1사람이 거주하는 그곳에서 석간수(바위틈에서 나오는 물)를 크게 한 잔 얻어 마시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천하 명당자리였다. 성급한 녀석은 단풍으로 멋을 내고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 능선에 올랐다. 초행길이니 매 순간 갈림길 이정표는 단독 산행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변환점이고 정보이기도 하다. 토요일이니까 능선에 오르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바람 부는 을씨년스러운 능선에서는 북쪽 방향으로 먼 저쪽에 불쑥 고개를 높이 든 봉우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갈 길 먼 정상이 솟아 있다
지도와 나침판으로 현 위치를 파악하며 고개든 그 봉우리가 정상임을 확인했다. 어느 산이든 길게 타면 경사가 원만한 대신 능선 산행을 오래 해야 하고 정상 공격만을 염두에 둔다면 정상에 가장 짧은 거리에서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이는 인생과도 같은 이치이니 이 세상에 쉽게 이루는 것은 없는 셈이다. “忍”를 머릿속 가득 채우고 육산으로 된 기나긴 능선에서 정상을 향해 차분한 걸음을 옮겨 나갔다. 태풍이 오고 있어서 그런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1팀 3명의 하산 등산객과 조우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산이 눈앞에 봉우리를 오르면 정상일 것 같은데 올라보면 야속하게 더 높은 봉우리가 있기를 반복하는 것에 반해 백운산은 초지일관 능선길을 따라 우뚝 솟은 정상을 바라보며 꾸준히 오름 산행을 한다는 점이다. 카펫트를 깔아 놓은 듯한 평탄한 흙길을 밟으며 정상 가까이 도달했다.
정상은 약20m 높이의 암봉으로 되어 있었다. 우측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길과 정면으로 로프를 타고 오르는 길이 보였다. 로프를 타고 바위를 오르면서 평범한 이 산이 왜 100대 명산에 속하는지 궁금했다.
역시 정상은 비어 있었다. 태풍이 온다고 하더니만 세찬 바람은 땀에 젖은 몸뚱이를 사정없이 차갑게 몰아붙였다. 정상부 바위틈에서 보온자켓을 꺼내 입고 하늘을 향해 누워버렸다.
** 제목 : 忍 **
참을 忍 夢思 독고철
왜 나더러 참으라 하시오?
평생 치이며 참고만 살았소
뜻대로 살아 본 적이나 있소?
아니 평생 치이고만 살았소
남에게 화를 내 본 적이 있소?
돌아보면 때론 화도 냈더이다.
남들이 당신의 눈치를 봅디까?
돌아보면 때론 그러 했더이다
인생이란 탄생의 순간부터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오
인생이란 죽음의 순간까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인 게요.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가 정상의 진수를 보기 위해 기지개를 폈다. 북쪽의 산세로 보아 지리산과 연계한 산이 아닌 단독의 고봉이라고 생각되었다. 고개를 돌려 동쪽과 남쪽을 바라보는 순간 백운산이100대 명산으로 꼽혀야 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곳 방향에서는 이제까지 어느 산에서도 보지 못했던 백운산을 우러러 모시는 듯 한 기나긴 능선이 납작 절을 하는 자세로 길게 뻗어 있었고, 30층 아파트에서 지상을 내려 보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위풍당당 광양시의 주산이다
제왕을 향한 길고긴 능선의 하례, 멀리 바다가 보인다,성급한 단풍도 시작되었다
높이 1222m 백운산은 대한민국 산중에 고봉군에 속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산 채는 높이에 걸맞게 크지만 길게 늘어선 능선과 어느 방향에서든지 곧 바로 정상을 바라보며 산행 할 수 있다는 점, 정상에 올라서면 제왕의 산답게 주변 산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고 멀리 광양만과 순천의 여자만 까지를 한 눈에 아우를 수 있는 명산임을 확인했다.
홀로 정상의 가장 아쉬운 점은 인증샷이다. 핸드폰과 디카를 들이대고 상상 안 되는 표정을 지으며 무작정 사진을 찍었다. 그 중 딱 1장의 기적 같은 사진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해가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하산을 서둘렀다. 다시 짬을 내어 멋 진 백운산 능선 산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원점회기 산행에 들어갔다.
초행길 산행에, 어두워지고 있고, 지방산으로 이정표도 부실하고, 오가는 사람 없는 깊은 산에서 자동차가 있는 하백운사까지 다시 찾가는 원점산행은 말로는 편안하지만 성공하기 싑지 않다는 생각에 잠시도 긴장감에 늦출수 없었다. 한 순간 산속의 미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지도와 나침판으로 위치를 체크하고, 서두르지 않고 쉼없이 달려 운이 좋은 것인지 백운사 갈림길로 들어 설 수 있었다. 급한 내리막 경사길을 달려 드디어 백운사에 도착, 산행을 안전하게 마감 할 수 있었다. 14시30분 출발하여 17시30분까지 3시간의 짧고도 긴 산행이었다. 긴 산행이었다는 이유는 우선 체력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해가 떨어져 야간 산행까지를 염두에 둔 초행길 산행이었던 점이 상당히 부담이었으며 비상시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암흑속에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깊은 산 급경사 산길을 굽이굽이 조심 조심 운전하여 돌아 인간세계로 돌아왔다. 변함없이 그곳에는 굉음을 내며 이마에 큰 불을 두 개씩이나 달고 내달리는 차량들로 붐볐다. 광양에서 잘까? 순천에서 잘까?를 고민하다가 다음날 여유 있는 아침을 맞고자 다음 목표인 순천의 조계산 아래 선암사 근처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약 100km 거리에 승주IC를 향해 차를 출발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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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조계산 ( 884m) 100대 명산
조계산 정상
야밤을 달려 승주에 도착한 시간은 8시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 급선무였다. 대도시가 아니면 대부분 시골은 8시 (읍내도 마찮가지다)가 지나면 음식점문을 닫는다. 먹거리를 찾아 낯선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했다. 다행이 간판불을 밝힌 식당을 발견하고 허름한 시골식당에서 추어탕을 주문했다. 남도 그러면 맛깔스런 푸짐한 음식과 창 한가락이 떠오르건만 이번 여행은 전투같이 진행하였기에 그 멋스러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늦은 시간 남도의 밥상을 받아들었다. 제대로 된 추어탕과 밑반찬 9가지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시장끼가 밥맛이라고 하지만 시골스런 그 집 음식은 소박하게 생긴 나이든 여주인의 마음씨만큼이나 푸짐하고 맛이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라며 차려준 밥상으로 원기를 회복한 필자는 잠자리를 찾아 약 7km 떨어진 선암사계곡 어둠속 깊숙이 들어갔다.
선암사 입구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펜션들이 꽤나 많이 들어서 있었다. 방문객들이 많아서인지 가로등까지 있는 깊은 산속이었다. 주말이라 찜찜해 하면서도 이 많은 펜션중에 잠 잘 곳이 없으랴 기대하며 잠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하루 밤에 5만원에서 크기에 따라 30만원까지 한다는 펜션은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로 입구에 방 없음이라는 입간판을 하나 같이 내달고 있었다.
다시 어둠을 질주해서 승주 IC까지 약 10km을 돌아나와 근처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모텔을 찾아 간신히 여장을 풀었다. 지금까지 산행 후 땀으로 젖은 옷들을 정리할 여유가 없어 비닐에 아무렇게나 담아두었던 짐들을 꺼내들고 마지막 산행을 앞둔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0시쯤 되어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5시에 눈을 떴다. 거울 속에 두 눈은 양쪽 눈꺼풀에 혹 하나씩을 붙여 놓은 듯 탱탱 부어 있었다. 두 발목을 비틀며 컨디션을 몸에게 물었다. 역시 곤한 잠은 피로회복에 그만인 것인 양 천근만근 무거워야 할 몸은 그런대로 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며칠동안 그떡 없이 잘 버텨주신 발님
58세! 부끄럽지만 통통 부은 눈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은 쾌락도 주지 않는다”는 몽테뉴의 말대로 지난 며칠 산과의 고된 만남은 필자의 정신을 무서울 정도로 맑게 해주었다. 살면서 반복된 일과에서 오는 권태감과 왜 사는지? 에 대한 답이 궁할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였던 자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던 셈이었다.
아침운동으로 몸을 풀고 폭풍이 오고 있다는 기상예보대로 가을의 부술비가 오는 새벽에 마지막 여정인 조계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른시간이라 역시 아무도 자리를 지키지 않는 주차장 정산소를 지났다.
정산소를 지나 우측도로로 진행하면 선암사 주차장이 별도로 있고 그곳에는 식당과 모텔, 여관들이 줄잡아 10곳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밤 이곳 사정을 펜션주인이 조금만 알려 주었더라면 되돌아 멀리 나가 잘 이유도 없었는데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찾고 싶은 마음, 지역의 인심과 사람의 선입관은 요란한 광고가 아니라 지역민의 따뜻한 마음씀이 아닐까 싶다. 그 날밤 "방 없다."고 외칠게 아니라 늦은 시각 나그네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걱정하는 마음씀과 귀찮지만 "10분 정도 더 가면 모텔들이 있다."고 말해주면 좋았을텐데 고약한 펜션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차를 하고 선암사 입구에 섰다. 추가로 관람료를 내는 곳이었지만 7시의 이른 시간에 표를 파는 사람은 없었다. 깊은 계곡을 따라 그림 같은 고요한 아침이 산 새소리와 함께 필자를 맞았다. 생소한 복장의 스님들이 두 손을 합장하고 정중한 인사를 건냈다.
매표소에서 선암사까지 계곡은 평탄하고 차분했다.
선암사 입구
선암사 측면 광경
선암사는 “태고종 총림”이라는 플랭카드가 알려주듯 좋은 입지에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로 산에 오르며 되돌아 본 선암사는 작은 궁궐을 연상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소개하자면 태고종 선암사는 당일 행사 때문인지 몰라도 비구니와 비구승이 한데 어울려져 있었고 본인의 직위에 따라 회색과 고동색으로 승복을 달리 입고 있었다. (회색이 상위직) 남녀스님 관계없이 극진히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그들만의 서열이 매우 엄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색의 승복은 처음 보았다.
사찰의 왼쪽 모퉁이에 있는 템플스테이 건물은 이제까지 일반의 사찰에서 볼 수 없던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목조 2층 구조에 창문은 바깥쪽으로 두꺼운 나무판재 덧문이 인상적이었다. 내부에 들어가서니 마당 가운데 작은 원형 정원이있는 ㅁ자 형태의 2층 구조 목조건물이었다. TV에서 본 중국의 ㅁ자 집을 연상 할 수 있었다.
사찰의 중앙계단 앞으로 지나면 한 쪽으로 자리 잡은 “ㅅ간뒤” 라는 목조 건물이 재미있어 보였다. 중앙으로 넓은 통로가 있고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화장실이었는데 각각의 경계벽은 1m50cm 정도의 나무판자 칸막이와 칸막이 위로는 대나무 발이 내려져 있는 것으로 남녀의 한계를 갈랐다.
대나무 발을 밀치며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필자가 어렸을 적 학교화장실이 그렇게 생겼었는데 재래낙하물이 훤히 보이는 화장실이 그곳에 있었다. 가로 25cn,세로 60cm 직사각형 구멍이 나무로 된 화장실 바닥에 뚫려 있었고 밑에 내용물은 쌀겨로 덮여 있었다.
구멍과 구멍 사이는 1m50cm 칸막이로 한 칸을 구분했고 통로가 있는 정면쪽으로 문이 없었다. 볼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서로 얼굴을 대한들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뜻이려니 생각했다. 이 화장실은 최근 축조되어져 실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선암사를 뒤로 하고 편백나무 군락지 비탈길을 올라 대각사에 도달했다. 참고로 선암사를 끼고 좌측 길로 들어서야 정상 등산로 인데 필자는 엉뚱하게 우측 길로 접어들어 알바를 한참 동안 해야 했다. 다시 대각사를 정면에 두고 좌측산길을 따라 나서면 그 길은 대각사 후면을 돌아 드디어 조계산 정상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조망도 없는 산길을 “내가 나를 아느냐?”는 화두를 던지며 쉽 없이 올랐다. 큰 비는 아니어도 가을비답게 부슬비가 어깨를 적셨다. 봄비는 보슬보슬 온다고 보슬비, 여름은 길게 온다고 장마비, 가을은 부슬부슬 온다고 부슬비, 겨울은 흰 솜사탕처럼 뿌린다고 흰 눈이라고 하던가? 갑자기 하얀 눈이 가득한 평원에 서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터의 둘레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7부 능선쯤 오르면 조계산의 갈딱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그 시작지점에 성곽이 쌓인 흔적을 발견했다. 산에 있는 성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선 식수가 있어야하고 적으로부터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가져야 하며 퇴로를 가져야 하고 사람들이 장기간 은거 할 수 있는 공간이 성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럴만한 여건이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한 가지 단서를 찾았다면 성터의 안쪽에 적지만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기사 굶어도 버티면 되지만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해도 조계산 7부 능선의 성터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대비하는 곳으로 적합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 약500m 고지 옹달샘 (수량 아주 적음)
조계산은 육산이다. 오르며 이렇다 할 특징도 없으며 전망이 있는 산도 아니었다. 이 산을 100대 명산으로 뽑은 것은 아마도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고 준수한 계곡이 있었기에 선택되지 않았나 싶었다.
출발하는 날부터 계획된 모든 산을 시작에서 하산까지 쉬지 않고 종료하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은 조계산 정상까지 계속 되었다. 다행이 필자 또래의 부부가 함께 정상에 있어서 인증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정상 장군봉 이정표
순천만 여자만을 바라보며
주차장, 선암사, 대각사, 정상, 작은굴골재, 큰굴골재를 거쳐 다시 선암사와 주차장까지 7시에 시작한 산행은 10시 40분이 되어 종료되었다. 3시간40분이 걸렸다.
괘나 큰 편백나무 숲이 있었다.
드디어 이번 목표 산행을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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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오는길
아침을 굶었기에 시장끼가 심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장성에서 14시52분 KTX를 예약했으니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차를 반납하고 무엇보다 며칠 동안 수고한 육신을 위해 고기 한 점의 보신과 뜨거운 샤워를 하고 싶었다.
11시 정각, 승주 IC를 통과해서 장성역에 도착한 시간은 1시간이 지난 12시였다. 차량을 반납하고 누가 보아도 땀에 쩔고 흙투성이 냄새나는 등산객은 배낭과 커다란 보스턴백을 옆에 끼고 고깃집을 향했다. 한우 등심으로 배를 채우고 인근의 사우나에 갔다.
참으로 이번 여행은 행복한 여행이었다. 남도에 그렇게 아름다운 산들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고, 남도의 고즈넉한 바다와 어우러진 바쁠 것 없는 평온한 들녘에서 삶에 여유가 느껴졌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무리한 일정인 줄 알면서 굴하지 않고 마침표를 찍은 의지와 건강한 신체를 필자에게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다시금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며 맑은 정신과 상쾌한 육신을 느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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