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기 2부
2024.3.10-3.20
3. 스 위 스 (파리 – 인터라겐 7시간)
아이거 익스프레스 (케이블카) 안에서 아이거봉 북벽이 보인다
파리역 – 벨포르 떼제베 4시간 30분
벨포르 – 인터라겐 버스 2시간 30분
인터라겐 – 스위스 융프라우봉
스위스 인구는 약 880만 명이다. 공용어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4개 국어를 쓴다. 국경은 동쪽 오스트리아, 서쪽 프랑스, 남쪽 이탈리아, 북쪽 독일로 바다가 없는 대부분 국토가 알프스산맥 속에 있는 산악내륙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89,450달러(4위)이며 (한국 35,990달러 33위) 국토면적은 약 4만㎢로 한국의 40% 면적에 작은 나라이다. 종교는 카톨릭 39%, 개신교28%, 이슬람5%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스위스에 오면 3번 놀란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수려한 풍광에 놀라고, 두 번째는 이 풍광을 철저히 가꾼 스위스 사람들의 노력에 놀라며, 세 번째 비싼 물가에 놀란다고 한다. 스위스 평균임금 수준이 전 세계 탑수준이어서 자연스레 물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달리는 떼제배 고속열차
융푸라우
알프스 산맥의 주요정상 중 하나로 높이 4185m의 봉우리이다. 인터라겐에서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타고 융푸라우요흐에서 하차하게 된다. 해발 3454m의 융푸라우요흐역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이기도 하며 열차 운행한지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역 플랫홈에서 스핑크스 전망동까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실내외 전망공간에서 알프스의 고산준령과 빙하 등 설산의 풍광에 빠진다. 스핑크스 전망대 정상엔 다양한 레스토랑, 방하를 뚫어 만든 터널형태의 얼음 궁전이 있고, 코 앞에 아이거 봉을 접할 수 있다. 아이거봉 반대쪽으로는 융푸라우봉과 유럽에서 가장 긴 빙하라는 알레치빙하를 볼 수 있다.
스핑크스 전망대는 3454m + 엘리베이터 상승 고도이므로 산소부족에서 오는 고산병에 유의해야 하고 급격한 동작보다는 스로우 모션으로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장갑, 방한복과 겨울 부츠도 챙겨가야 한다고 하나 필자가 방문 했던 3월 중순은 건물 밖에서의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가벼운 늦가을 복장이면 그다지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아이거 3970m, 매니 4107m, 융푸라우 4158m 알프스 세 개의 거봉을 바라보며 정상으로 돌진하는 20인승 아이거 익스프레스 케이블카
4000m이상의 알프스 고봉들이다. 계곡부에 목축업 하는 농가와 관광 숙박 산장들이 그림같이 조화롭다.
케이블카로 아이거봉 북벽을 오른다,
케이블카 종착역....이곳부터는 산악열차를 타야한다
이곳에서 해발 3454m의 융푸라우요흐역까지 레일 중앙에 톱니바퀴가 있는 산악열차를 탄다
기차 종착역에서 봉우리 정상인 스핑크스 전망대까지 고속 엘리베이터로 오른다
기상관측소인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아이거봉을 배경으로
말로만 듣던 아이거봉 정상이 눈앞에 있다
필자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융푸라우봉을 접했다. 행운이 반겨 30퍼센트 확률의 높고 푸른 하늘이 필자를 반겼다
케이블카 탔던 인터라겐에서 2시간쯤 달려 우리나라 면소재지쯤 규모의 제법 큰 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에도 자연에 순화된 사람들이 넉넉하고 행복한 얼굴로 조용히 살고 있었다. 저 높은 곳을 다녀왔다는 만족감이 감동이었다.
이탈리아로 가는길. 3월중순 잔설이 남아 있는 산과 들, 호수 그리고 자연속에 숨은 듯한 마을들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산과 마을은 대부분 시간이 정지된 이런 동화속 별나라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절대감의 쾌적함을 느낄수 있었다. 한편 전 국토가 이런 알프스의 깊은 산골에서 어떻게 농업국가 스위스가 세계 4위의 국민소득 국가가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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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탈리아 (인터라겐 – 밀라노 4시간 버스)
인구는 약 60,234만 명이고, 화폐는 유로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7,700달러(32위)이며 (한국 35,990달러 33위) 국토면적은 약 30만㎢로 한국보다 3배 정도 크다. 수도는 로마이며 종교는 카톨릭 80%, 무교 10%, 정교회 3.5% 기타로 구성된 카톨릭 국가이다.
국민은 대부분 라틴계 이탈리아인이고 국토의 75%가 산악과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와 비슷한 조건의 나라이다. 차창가로 보여지는 산과 들의 모습은 대부분 유럽 대평원의 국가들과 달리 마을 , 공장, 농토, 축사 등이 조화롭게 도로변을 따라 계속 되었다. 이 나라는 양원제 공화국으로 국가수반은 대통령이고, 정부수반은 수상이다.
유럽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이고 그 중심에 이탈리아가 있었으며 르네상스, 바로코 시대의 화려한 도시와 건축물, 미술품등은 영원히 이탈리아를 찾는 세계 관광객들을 환호케 하리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탈리아 여행지도
밀라노
수도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약 32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인구의 약 15%가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인이고 유럽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북부 최대도시이다. 대성당이나 기타 고대 건축물, 밀라노 패션쇼가 유명한 곳이다.
밀라노 두모오 (대성당)
밀라노의 상징이며 대표적 건축물로 시내 중심에 있다. 높이 157m, 폭 92m의 세계에서 4번째 큰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건설하는데 600년이 걸렸다고 한다.
관광객이 광장에 넘쳐났다.
비토리오 엠마누엘
시청에서 대성당가는 길목에 있으며 건물과 건물사이에 천정을 덮은 아케이드 거리로 이탈리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라고 한다. 두모우 대성당 인근의 명품거리이며 최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이 즐비한 곳으로 물가가 비싼 곳이다.
지붕을 씌운 아케이드 원조이다.
시청앞 소공원에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동상이 있다.
베니스 베네치아 (밀라노에서 3시간 버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인구 약 26만명의 베네치아는 해상의 구도심과 육지의 신도심으로 나누어져 있고 대부분 시민은 신도심에서 생활하고 구도심은 관광지로써 존재한다.
구도심 전체가 수로로 길을 대신하고 있어 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물의 도시라고 하며, 구도심인 섬에는 자동차도로가 전혀 없다. 오토바이도 없으며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벌금을 문다고 한다. 따라서 대중이동 수단은 걷기와 육지와 해상도시 섬을 오가는 수상택시, 수상버스뿐이다.
베네치아는 중세 훈족의 침입을 피해 9세기경부터 118개의 진흙섬에 400여개의 다리를 연결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섬들은 육지에서 약 3.7km 떨어진 수많은 진흙 섬으로 바닷물위로 썰물시 살짝 들어난 갯벌에, 파도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대지 조성을 위해 화강암 등으로 바다와 섬 경계 테두리를 깊게 쌓고, 그 안에 흙을 채워 대지를 만드는 방법으로 약 1000년에 걸쳐 현재의 섬도시를 건설했다 , 물에 잘 썩지 않는 오리나무를 촘촘히 밖아 (7-8m 하부에 단단한 화강암층 존재) 건물의 기초를 하는 등 현대의 콘크리트 말뚝기초와 항만공사 기본을 그때에 벌써 시현을 하고 있던 셈이다.
베네치아 그러면 검은색의 곤도라를 떠올리고 익숙지 않은 싼타루치아 등 성악곡 하나쯤은 흥얼거리게 된다. 우리나라 처녀 뱃사공은 고난의 상징이지만 이곳 뱃사공은 몇 년 일을 하면 시 외곽에 집을 장만할 만큼 부유해진다고 하는 좋은 직업이라고 한다.
곤도라 체험과 수상택시를 이용 베네치아 대수로를 관광했다. 예상대로 관광객이 섬도시에 가득했고 곤도라로 돌아보는 골목길 소수로에 (평균 수심 1.5m) 3-4층 낡은 건물에는 사람 사는 흔적이 없어 페허스러웠지만 대수로와(평균 수심 3-4m) 바다경계에 있는 성당과 귀족들의 집, 호텔, 공공건물은 상상 했던 베네치아 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했다. 한 때 지중해를 호령하며 번영했던 도시국가의 기품 있는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고대 베네치아는 도시국가로 보아야 한다
바다임에도 파도가 전혀 없다
곳곳에 대형 성당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바다에 떠있는 물체는 이 지역 수심이 얕아 배 항로 표시물이라고 한다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중심지이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중에 하나이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피아노독주 등 광장 주변 까페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올해로 304년 되었다는 까페 플로리안 커피점의 커피값은 일반까페 3-5배로 가장 저렴한 것이 에스프레소로 한잔에 약7500원, 와인 한잔에 22500원이나 했다. 나비넥타이의 중년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중세를 만끽했다.
화려한 까페에 들어서면 중년 웨이터 인도에 따라 자리를 배정 받고 주문을 하게 된다.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도 정중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두칼레 궁전
9세기에 세워진 베네치아 군주의 성으로 비잔틴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궁전 내에서 산마르코광장과 베네치아 석호를 바라 볼 수 있다.
탄식의 다리
1600년에 건설된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창문에는 돌로 된 창살과 위쪽으로 덮개가 있다.
궁에서 감옥으로 건너는 탄식의 다리
산마르코 성당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꼽힌다. 두칼레궁전에 속한 성당으로 산마르코 광장은 두칼레궁전 앞에 광장이다. 디자인, 황금 모자이크, 베네치아의 부와 명성을 담아 11세기에는 황금교회라고 불렀다고 한다. 건축물에 비잔틴과 이슬람 양식이 섞여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축물이다.
산마르코 성당
곤도라만 다닐수 있는 주택가 소수로로 주변 건물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듯 했다.
대수로 주변의 웅장한 모습으로 이곳에는 귀족의 주택과 공공건물, 성당, 호텔 등의 대형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수로 건너지르는 미션임파서블 영화장면에 나오는 다리이다,
보트투어로 보는 대수로 베네치아는 지중해를 제패한 강력한 도시국가라고 해야 할 이유가 충분이 있었다
피렌체 (베니스에서 3시간 버스)
피렌체는 BC59년 율리시스 카이사르가 병사들의 정착촌으로 건설한 도시로 1865-1870년까지 이탈리아 수도였으며 광역인구 약 150만 명이며,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 되었다. 14-16세기에는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건축물과 예술로 유명한 도시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탄생지이다.
성모마리아 대성당
조선 건국 초기인 1296년- 1380년 건설되었다. (돔 1461년 완성) 길이 153m 폭 90m이며 높이 90m에 이르는 거대한 성당이다. 깊이 있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전문가들이 해야 할 영역일 것 같다. 이곳에 피렌체 출신의 인물들 찬미 작품들이 있는데 단테의 신곡, 기마상, 조토의 흉상 등이며 44개의 스테인드 그라스 창이 유명하다고 한다. 내부관람은 스케즐상 할 수 없었다.
인산인해
시뇨리아 광장
피렌체 베키오 궁전 앞에 있는 광장으로 높이 5m라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모조품을 비롯 다수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비상 모조품
메두사의 머리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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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마 제 국 (피렌체에서 3시간 버스)
이탈리아를 알려면 그 근간인 로마제국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간단히 로마제국을 정리해 보겠다.
로마의 기원은 라티움에서라고 한다. 라티움은 이탈리아 중부 서안에 위치한 평야지대이며 (현재의 로마시에서 약 20km) 이곳에 BC 1000년 전 라틴인들이 정착함에 따라 라티움이라고 불렀다.
고대 로마는 도사국가 왕정체제로 시작해서, BC 509년 로마 귀족들에 의해 약450년 동안 로마공화정 정치시대를 열었다. 기간 중 대제국을 이루는 역사적인 전쟁으로는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BC264-BC146), 그리스와의 마케도니아전쟁(BC212-168)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다.
카이사르(시저), 스파르타쿠스 반란, 1차 삼두정치(시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2차 삼두정치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등 역사적 과정을 지나 BC31년 악티움해전 (그리스 악티움에서 있던 해전으로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연합군과 로마 옥타비아누스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공화정시대를 끝내고 황제가 되어 로마제국시대를 연다.
약 420년 동안 유지되어 온 로마제국은 AC 395년 동-서로마제국으로 나뉘게 된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현재 튀르기에의 콘스탄티노블, 서로마는 이탈리아 중북부 라벤나로 천도하였다. 이후 서로마제국은 AC476년 게르만에 의해,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 멸망 후 약 1000년이 지난 1453년 오스만 터키에게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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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폼페이는 약 2000년 전 로마제국의 도시이다. 나폴리 인근에 있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로마 귀족들 휴양지였다. AC 79년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가 화산재와 용암 등으로 사라졌다. 1861년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80% 정도 진척되었다고 한다. 당시 폼페이 인구는 약 2만명으로 추정하고 그 중 2000명이 화산 폭발로 사망한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뒷편 왼쪽 산이 베스비오 화산이다
2만명의 대도시 폼페이
유적지를 돌아보면 마차도로와 인도가 구분 되어 있고 마차로에는 속도 방지 턱도 있었다. 납으로 만든 수도관이 좁은 인도를 따라 도시 전체로 뻗어 있다. 간간이 교차로에 수도물 나오는 대형 돌항아리가 있었는데 현대와 같은 모양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현대의 증기사우나와 너무 흡사한 기능을 가진 대형목욕탕도 있었고 사창가 상가에는 성행위 장면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원하는 그림을 지적하면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현대의 방법들과 진배없다.
인도와 마차로
광장에는 정치인들이 연설하는 하는 곳들이 있었고 대부분 귀족들의 별장개념 집들은 규모면에서 예술적 모습에서 상당한 수준이었다. 거의 현대 도시기능과 유사한 대단한 유물의 도시가 화산재에서 발굴되면서 약 2000년 전 인간사를 보는 흥미로움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화산폭발로 사망한 당시 흔적으로 발굴시 땅 속 구멍에 석고를 부어 사진속 형태가 나왔다고 한다.
쏘렌토
나폴리에 속한 도시로 “돌아오라 쏘렌토” 나폴리 민요로 알려진 곳이다. 필자는 중학생일 때 돌아오라 쏘렌토를 18번으로 부르곤 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저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으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며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쏘렌토로 돌아오라"...노래말을 머릿속에 담아 쏘랜토의 청초한 아름다움을 기대했었다.
쏘렌토는 해변가의 작은 도시로 바닷가에서 약 50m의 암 절벽 위에 도시가 있다. 지중해의 맑은 물과 바다 건너 보이는 나폴리 항구는 그런대로 아름다움이 있었으나 필자가 상상 하던 그런 도시가 아닌 30분이면 족히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시골도시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이드 말로는 돌아오라 쏘렌토가 떠나간 여인을 애타게 그리는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진실은 옛날 이탈리아 총리가 쏘렌토로 휴가를 왔고 당시 쏘렌토 시장이 융숭한 대접을 했다고 한다. 총리가 떠나며 부탁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시장이 우체국을 쏘렌토에 개설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총리는 떠났고 시장은 아름다운 쏘렌토를 잊지 말고 우체국을 개설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노래가 "돌아오라 쏘렌토"라고 하니 필자가 어릴 적 이 노래를 애달프게 부를 일이 아니었다.
나폴리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 시칠리아왕국의 수도였다. 인구 약300만 명으로 로마, 밀라노와 함께 3대도시에 속한다. 주변에 베스비오 화산 등 이 있으며 나폴리는 피자의 본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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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마 & 바디칸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인구는 약 400만 명이다. 인구만으로 보면 약 300만 명 인구의 북부의 밀라노, 남부의 나폴리와 더불어 3대도시가 비슷한 규모이다. 그중 로마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 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카톨릭교의 중심지이다. AC 8세기부터 1870년까지 교황령의 수도였으나 1871년 이탈리아가 통일 되면서 합병 되었다.
현재 로마에는 교황령의 바티칸시티가 있다. 바티칸시티는 로마 내에 있는 도시국가로 크기는 우리나라의 보라매공원 넓이 정도이다. 인구는 교황과 성직자등 수백 명에 불과하다. 이탈리아로부터 교황령 국가로 1929년 독립했으며 전 세계 주권국가중 가장 소국으로 법적으로는 주권국가이다. 로마의 유적들은 교황령으로 있던 약 1000년 기간 중 예술의 꽃을 피워 미켈란젤로 등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바티칸에 모여들어 르네상스시대를 열고 그 중심이 되었다.
바티칸시티에 입장하려면 1년전부터 예약을 해서 즉시 입장하는 방법과 필자 같이 단기 여행으로 방문한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티칸 성벽을 따라 기나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 약 300m 줄을 3시간 이상 기다려 조금씩 이동 한다고 생각하면 머리에서 김이 오를 정도로 따분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사람들은 로마의 하이라이트 바티칸 입장을 위해 군말 없이 고통을 감내했다.
와 보았던 경험 있는 사람들은 등산의자를 준비해 와 앉아 있기도 하고 주변 까페에 진을 치고 교대로 쉬면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이탈리아 관광 온 사람들은 다 만난다고 생각하면 틀림 없는데 동양인이면 90%이상 한국인이었다
성베드로 대성당
바티칸시티 남동쪽에 위치하며 1506년 착공하여 1626년, 약120년 동안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이다. 성당의 건립 위치는 예수의 12 제자 중 한 명인 로마 초대주교 성 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웠다고 한다.
르네상스부터 바로코에 이르는 수많은 예술가의 거장들이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며 건설되었는데 그중에는 1547년-1564년(사망)까지 건설을 책임졌던 불출세의 천재화가 미켈란젤로도 있었다.
바티칸 시티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며 대성당 내외부에 최대 6만 명을 수용 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이 45.44m, 너비 114.69m 규모의 대성당 하부에는 성베드로 이후 대부분 교황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교황의 주거지가 인접해 있고 대관식을 비롯해서 교황이 집전하는 대부분 의식이 열리는 장소이다. 대성당 앞으로 너비246m, 길이 300m의 성베드로 광장이 있다. 대성당 오른쪽으로는 교황 거주지인 사도궁전과 바티칸박물관이 있다.
성베드로 대성당 정면
세계 최대규모의 성당 내부로 사람크기를 가늠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인지 상상 할 수 있다.
대성당 안에는 여타 로마교황 기념상 상당 크기의 김대건 신부의 동상도 있었다.
바디칸 시티 입장을 기다리는 기나긴 줄.....다시 도전하고 싶지 않다.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시티 내부에 있는 세계 최대급 미술관이다. 이 박물관은 16세기 교황 율리오 2세 때 건설되었으며 한해 약6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미술관 소장 주요 작품으로는 그리스, 로마제국, 이집트 등의 유물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프리 안젤리코 등의 그림, 조각 등 여러 유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내부 천정
박물관 내부 천정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 시티 안에 있으며 교황의 관저인 사도궁전 안에 있다. 르네상스시대 대표적 예술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성당 천정에 12,000점의 미켈란젤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고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미켈란젤로 이후 천재는 없다고들 하는 그 대단한 천정과 벽화의 작품들은 감상했다.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로마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AD72-80년 완성된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건축물이다. 5만-8만 명 관람객을 수용 할 수 있었고 로마가 쇄락해감에 따라 유적지로만 남아있다. 한해 48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한다.
콜로세움
개선문
포로 노마노 예배당
포로 노마노는 로마 구도심 가운데 위치하며 로마제국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개선식, 선거 등 국가 중대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로마시대 중요한 건축물 대부분이 이곳에 위치하며 최초 사원, 신전, 왕궁, 의회장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잔해와 기둥 몇 개만 남아 있다. 연간 4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 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
1762년 완성된 바로코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이다. 꾸며 낸 이야기겠지만 분수를 향해 돌아서서 1번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올 수 있고, 2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3번 던지면 사랑이 깨진다고 한다는데 2016년 한 해 동전을 수거한 결과 우리 돈으로 약 17억이나 건졌다고 하니 로마 김선달이 따로 없다 싶었다.
잠실역 롯데 백화점 지하 입구에 가면 축소된 모조품 트레비 분수가 있다.
5. 여행을 마치며
서유럽을 여행하며 필자는 유럽대륙과 국가들에 대한 퍼즐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여행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나가는 선진국임에 틀림 없다. 대영제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로마제국의 이탈리아, 천혜의 보고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이들 나라가 보여주는 역사와 전통, 문화예술, 국민들의 자존감 차 있는 모습, 이제까지 보아왔던 세상의 모습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그들나라에 집합체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기회가 있다면 그들 나라중 근본의 시작으로 생각되는 이탈리아 로마 만큼은 한번 더 가보고 싶다. 로마의 역사가 유럽과 나아가 인류의 역사라고 느꼈기에 자유여행으로 로마 공부를 더하여 마음에 눈을 열고 다시 가 볼 생각을 해 본다. 한편 고대 우리 조상인 고조선의 역사와 유물도 이들에 뒤쳐지지 않게 분명히 존재 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부 끝
여분의 사진들
스위스 인터라겐 산장호텔
인터라겐은 외국인 스키어 천국이다
케이블카 종점... 이곳에서 스키어들은 활강을 시작하고 우리 일행은 산악기차에 오른다.
산악열차
얼음궁전
융푸라우 봉 증명사진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상상으로나 화면보다 한번쯤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BBC 선정 죽기전에 가보아야 할 나폴리 해안도로및 마을
나폴리 인근 해안 마을
지중해
이탈리아 현지 가이드선생님
지중해
로마 골목길로 관광객이 넘친다
여행의 피로 풀기 에스프레소
콜로세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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