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여행기

독고철 장가계와 2023년 중국

독고철 2023. 5. 8. 18:33

장가계와 2023년 중국

 

장가계 천문산

 

천문산 인증 샷

 

코로나 시대

 

20201월 중순 중국 우한시에서 발병한 코로나19는 수많은 세계인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백신이 개발되고 안정세를 보이던 코로나 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근 22개월이 지난 202110월에 위드 코로나로 전환 되었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대중이 모이는 곳에서는 20235월 현재에도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살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의 경우 코로나가 발생되면 해당 도시 전체를 차단하거가 대단지 아파트를 통째로 차단하는 무지막지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결과론적으로 자유진영은 코로나 위기에서 2110월 전후로 위드 코로나로 사태를 전환하였으나 고집스런 중국은 2023년 초가 되어서야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고 대외개방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중국이 위드코로나를 선언한지 불과 수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이번 장가계 여행중 공항요원이나 시설물 직원들 극소수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낀 중국인을 본 적이 없었다. 다들 무방비 상태로 자유를 만끽하는 이들 앞에서 코로나는 의미가 없어 보였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필자는 여행기간 동안 항상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중국 관광객들 중 마스크 쓴사람은 없었다. 

 

중국여행에서 꼭 피해야 할 시기가 있다. 인구가 14억 명이니 이들의 연휴와 겹치는 기간에 여행은 상상초월의 인파속에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숙식에서, 기다림에서 쉽지 않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 기간은 설 연휴, 51일부터 3일까지 노동절연휴, 그리고 1주일씩 연휴 한다는 추석연휴이다.

 

20234월초 중국의 여행이 개방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행목록으로 꼽아 두었던 장가계 투어를 신청했다. 노동절로 피해야 할 여행시기임에도 언제 또 다른 이유로 닫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은 코로나 상황도 게름직하고, 여행 중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앞서 신청했다. 아시아나 항공 A300 승객정원 300명인 비행기에는 백여 명의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한국인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300명 정원의 비행기안은 50%이상이 빈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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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억

 

30년전 뻬이찡

 

1992년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하기 전 시대로 뻬이찡 시장의 초청으로 VIP 수행원이 되어 베이찡을 처음 방문 했던 기회가 있었다.

 

당시 거리에 넘치는 베이찡 사람들은 남루한 인민복장이 대부분이었다. 기름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얼굴 빛사람들만 넘쳐나는 음침한 거리에 앞자리과 뒷자리 사이에 파이프로 창살을 설치한 빵차라 불리는 깡통차 택시가 드물게 다니고오래도록 머리 감지 않은 대부분 사람들은 기름기 흐르는 머리카락으로 옷에서는 쩐내가 났었다.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많지 않은 자동차들은 습관적으로 경적소리를 달고 살았다. 질서나 기다림, 줄서기, 조용한 소리로 말하기, 아무 곳에서나 용변보기, 심지어 호텔의 엘레베터에서 상의를 벗은 채 떼 지어 담배를 피워대는 등 당시 중국 은 상상초월이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임에도 번화가 대로변 낡은 아파트는 초라했고 바렌다가 없는 창문에는 주로 붉은색 빨래들이 촘촘히 내걸려 거리에서 바라보면 귀곡산장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대로변 낡은 아파트나 빌딩 뒤쪽으로 기웃거려보면 대로변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발전된 거리임을 느낄 수 있었다.

 

 

10년전 중국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등소평의 개방 정책 후 중국의 발전은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을 다녀온 것은 201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하남성의 태항산을 다녀왔다.

 

당시 산둥반도의 청도공항으로 들어가 태항산까지 중국내륙을 여행했었다. 청도는 수차례 방문 헸던 도시로 낙후된 지역을 늦게 개발 정비하면 가장 신도시가 되듯 선진국의 상징인 빌딩 숲과 새로 지은 아파트, 줄을 잇는 공장들이 즐비했고, 깡통차인 빵차들이 사라진 거리엔 세계 명품 고급차들이 번화가 거리를 달렸다.

 

도시사람들 행색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내륙으로 8시간 달리는 버스 속에서 바라 본 중국의 시골 모습은 그리 발전된 모습이 아니었다. 끝이 없는 들에는 가끔 농부들이 보였고 목까지 올라오는 전통의 검은색 중국식 복장을 한 촌로들이 낡고 초라한 농가 주택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즉 농촌은 개화의 바람이 미치지 못했었다는 뜻이다.

 

이때만 해도 모조품이 진품처럼 시장에서 팔리고 관광객들은 가짜인줄 알면서 귀국 선물을 구매하곤 했다. 서울에 버금가는 시설과 미인들이 있는 화려한 술집은 1인당 100불이면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고, 우리 돈 만원이면 맛사지 클럽에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지금은 중국인 급여가 백만 원 선이라고 하던데 당시는 삼십만 원 선으로 돈의 가치 차이로 관광객이나 외국인은 별천지의 세상에서 으시대며 흥청거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2023년 장가계

 

2023년 오늘에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최신식 고속도로와 고속철이 건설되고 도시 어느 곳에서도 인민복장이나 중국 전통 복장을 한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곳저곳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개방과 발전에 따른 물자의 풍부함 속에 국민들 의식주 수준에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었다.

 

통상의 주거지가 우리나라처럼 아파트로 변해 있었다. 고급스럽지는 않았고 1층에서 30층 꼭대기층까지 바렌다 창문에 쇠철망을 해놓은 것이 특이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고압 송전선이 번화가 도로곁에 설치되어 있었다.

 


모택동 출생지 장사는 인구 1000만명의 도시로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정도 달리게 되며 차창 넘어 보이는 도시는 필자가 알던 예전의 북쪽의 도시들과 달랐다. 쭉쭉 연이은 고가도로는 철제거푸집을 써서 미끈하게 뽑아져 있고 주변은 노후 또는 고색창연한 옛 도시가 아닌 현대판 신도시와 빌딩들 아파트들로 가득했다. 어둠속에서 잘못 본 것일까?

 

이미 이 나라는 10년 전 필자가 알던 중국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보이는 신축된 아파트군 들은 빈집도 상당수 보였지만 호남성의 성도 장사나 36만 명이 산다는 장가계시는 우리나라 서울이나 신도시를 보는듯했다. 중국은 적어도 도시에서는 이미 후진국 주택에서 현대적 아파트로의 주거변화가 완성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상점들은 잘 디자인 포장된 물건들이 가득했고, 더럽고 시끄러운 무질서한 옛 기억에서이 나라는 물질적으로나 국민의 민도에서 중진국에 도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휴계소

 

이번 여행에서 와 닿는 것은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많이 벤치마킹 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속도로나 고속철, 곳곳에 교통표지판이 그렇고, 라인마킹, 안전난간을 비롯한 교통시설, 고속도로 휴게소의 시설 등 1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에는 앞쪽 문이 없었던 이상한 화장실에서 현재의 휴계소 시설은 우리와 비슷한데 청결유지 관리면에서 부족함이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대변을 보기 위해 줄을 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화장실 안에서 청년이나 어른이나 100퍼센트 담배를 피워 문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나라는 담배를 청년과 어른이 아무 거리낌 없이 함께 태우는 모양이다.

휴게소 이용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국이나 진배없다. 우리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자동차들이다. 세계명품 차량들이 휴게소 주차장에 즐비하고 대부분 새 차라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예전과 달리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강력한 정부정책이 시행되어 차들이 사람을 피해가는 모습이고, 경적을 울리면 벌금을 물린다니 10년 전 난장판의 차량운전과 경적소리, 무질서가가 많이 개선되어 보였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들도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다. 조잡하고 얼렁뚱땅 한글이나 포장에 도용하던 그런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 제법  포장디자인도 우리 쓰는 것과 거의 같다고 보아야하고 매장 진열도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 선입관이 남아 이 사람들 물건을 믿을 수 있을까 생각에 구매가 망설여졌다.

또 다른 느낌은 시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시끄럽게 큰소리 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중국이 후진국을 벗어나고 있는 걸까? 그리 시끄럽던 사람들과 경적소리도 예전과 달리 줄었고 여행지에서 큰소리로 누구를 부르거나 대화하는 사람은 이번 여행에서 거의 보지 못했고 거리의 청결도 제주도의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가지 부끄러운 점이 있다면 공항이든, 식당이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곳에서 시끄러운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차를 타면 의시 대며 폼 잡으려는 모습은 우리네와 비슷했고, 비위생적인 음식들도 이제는 위생적으로 표준화되어 가는 중이었으며, 판매원의 복장도 제복에 가까운 복장으로 바뀌었다. 장가계 이곳만 그런지 몰라도 관광 온 사람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인건비가 높아진 탓일까? 아니면 정부의 강력한 단속 탓일까? 그러고 보니 노점상을 본적도 없었다.

코로나이후 첫 여행객이라던 우리 일행에게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한국 돈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 3년 동안 관광객이 오지 않았으니 원화 거래가 중단된 것이었다. 상점에서는 위안화만 받고 중국인들은 위쳇 핸드폰 결재를 사용 중이었으며 거의 현금거래를 하고 있지 않았다.

 

기후와 환경


북쪽과 달리 남쪽에 위치한 장가계는 황사가 없었다. 호남성 장사, 장가계 이곳은 아열대지역으로 대평원이 있고, 장사에서 3시간 정도면 도달하는 장가계가 있는 큰 산맥도 있다. 북쪽에 비해서 삶의 환경이 안정적 느낌이 들었으며 농가 주택도 개량을 마쳐 거의 우리농촌과 비슷한 수준의 삶으로 느껴진다.

 

호남성은 풍요로운 땅이다. 상당 규모의 강들이 서로 엃혀 평원을 지나고 있었다. 북부는 강이 적고 강수량이 적어 벼농사가 불가한 지역이 대부분이나 이곳은 어딜 봐도 옥토에 논들이 펼쳐져 있다. 역시 적당한 산과 나무, , 강수량이 살기 좋은 곳과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은 3가지 꼭 가보아야 할 관광지가 있다고 한다. 1번이 장가계이고 2번이 계림이며, 3번이 백두산이라고 한다. 한편 중국인들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 알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 한다고 한다. 그만큼 땅이 넓고 어느 한곳을 보고 느꼈다고 중국 전체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되었는데 중국은 외부로 전화나 문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 호텔에서는 와이파이 사용시 카카오톡이 가능했는데 이번에 경험한 중국은 예외였다유심칩과 로밍도 다 마찬가지였는데 가이드 말로는 위쳇 가입이 되어야 하고 통화 상대자도 위쳇에 가입되어야만 원할한 교신이 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 오는 카톡이나 전화는 받아 볼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한국으로 발신이 불가했다.

 

2023년 중국은 1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예전과 같이 거리에 늙은이들이 넘쳐나지도 않고, 1부부 1자녀 정책의 산물인 중산층 젊은 중국인들은 교양과 예절, 질서 면에서 이미 세계화 되었다고 보여 졌다.  다음세대인 20대의 젊은이들도 간단한 영어와 한국말 인사 정도는 웃으며 말하고 있었고, 유창한 생활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이미 자유라는 의식을 깨우쳤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현대화 된 도시와 아파트에서 살며 삶의 질에 대해서도 깨우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0년의 세월이 더 흐른다면 중국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다음세대가 만들어 가는 중국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장가계

 

호남성의 성도 장사공항에 내려 장가계까지는 약 4시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장사는 1000만명 서울만한 대도시로 현대적 도시계획과 새로 건설되어진 것으로 보여 지는 아파트들이 도시를 덮고 있었다. 도로는 잘 정비 되어 있고 거리의 조경수들도 서울과 같은 수준으로 보였다.

 

장가계는 중국 제1호 국립공원으로 장가계시는 36만명 인구에 일산 신도시 같은 느낌의 아파트 천지의 말쑥한 도시였다. 이곳 호텔에서 매일 1시간가량 버스로 이동하는 곳에서 장가계 관광을 하게 된다. 장가계에 대한 기행문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므로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장가계를 설명하기 보다는 사진으로 그 느낌을 전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정리 한다면 가 보길 잘했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가계 대협곡

 

대협곡을 가로지르는 유리다리로 유리 위를 걸으며 수백미터 깊이의  계곡을 살펴 볼 수 있다.  중간부분에는 번지점프를 하는곳도 있었다. 

 

장가계 엘리베이터 입구

 

계곡에서 죽순이 솟아 오르듯,,,,손가락이 고개를 든듯한 모습이 펼쳐졌다.

산에 오를 때는 엘리베이터나 사진처럼 케이블카를 탄다. 등산은 아니더라도 하루 산에 오르면 5-7시간은 산속에서 움직여야 하므로 건강한 사람이 여행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9부에 사람이 걸을수 있도록 콘크리트 또는 유리로 절벽위에 길을 만들었다.

 

 

손가락 모양의 기암괴석이 계곡을 채우고, 산의 9부 절벽에 유리나 콘크리트로 만든 잔도를 걷는 짜릿한 즐거움이 있으며, 우리나라 설악산 대청봉에서 산세를 펼쳐보는 후련함도 케이블카에 실려 간단하게 정상에 올라 바라 볼 수 있다. 하늘로 가는 문이라는 천문산 구멍도 통과해 보았다. 천문산 아래 계곡에서 펼쳐지는 천문산 쇼도 관람했다.

 

 

60명의 대합장단이 생음악으로 뮤지컬을 이끌었다.

 

산중턱에 조명장치를 이용한 선녀의 모습과 춤사위가 이색적이었다.

 

 

돌아오는 길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자는 입장과 편이시설을 설치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면 후대에 까지 그대로 물려 줄 수 있는 반면 케이블카, 에스컬레이터, 유리잔도 등 편이시설을 설치한다면 많은 당대 사람들이 즐길 수는 있으나 시설이 노후 되어 철거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그것 또한 신중히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이라고 덮어두며 46일의 장가계 여행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천문산  뒷 모습

 

천문산 앞 모습

 

원거리에서 바라본 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