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철의 아프리카 3부
탄자니아
1961년 영국식민지에서 영연방으로 독립하였고 인구 5104만명이고, 면적은 대한민국의 9배이다. GNP 955$, GDP 481억$이고 수도는 도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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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3-14일 18-19알차
12월14일 새벽4시 탄자니아 잔지바르 호텔에 입성해서 5시쯤 잠자리 들어 9시에 깼다. 예상은 했지만 에어컨 아래서도 땀이 솟는다. 드디어 상상하던 아프리카에 온 느낌이다. 밀린 빨래를 해서 널었다.
오후 관광은 소형 목선을 타고 30분 정도 인도양을 달려 나가 창구섬에 가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섬 가는 바닷길은 쪽빛 바다였으며 영화 속에서 아랍상인들이 흑인노예를 매매하던 작은 광장이 있었다. 현재는 최고령 197살 바다 거북이를 비
롯 백 살 넘는 거북이들이 집단으로 사는 섬이었다.
한편 이곳 잔지바르는 인종적 특징이 없었다. 키가 크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동양인 콧수염의 새까만 키 작은 흑인들이 홍조인 아랍인들과 뒤섞여 살고 있었다.
에디오피아, 남아공,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에, 보츠와나, 케냐를 여행하며 아프리카 대륙이 참 크기도 하고 나라별로 인종도, 피부색도, 머리, 얼굴, 몸의 생김새, 복장의 특징 등 모두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탄자니아 잔지바르는 다른 모습이었다. 결론은 이곳 잔지바르는 아랍인들이 현지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던 무역도시였기에 세월이 지난 지금은 혼합된 인종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인종에 특징이 없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흑인들 중에서도 살갗을 태우는 뜨거운 태양 탓인
지 피부가 새까맣고, 얼굴은 이제까지 보았던 흑인들 중 가장 여유가 없고 험하게 생겨 보였다.
잔지바르의 아랍인 중심지에 들어서면 다른 도시에 비해 혼란스러워 보이는 1.5m쯤 되는 아랍식 좁은 골목길 중심으로 상가와 건물들이 들어서 미로로 도시가 이루어져 있다. 관광객을 제외한 백인들 모습은 거의 볼수 없는 그곳은 당연히 그들 후손들이 조상의 부를 대물림하며 살고 있는 듯 했다.
노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아무런 유물도 유품도 없이 사진 몇 장이 다였다. 고대부터 전쟁에서 지는 국가의 인종은 노예로 사고 팔렸지만 이곳 흑인들은 자기 땅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어느 날 노예 사냥꾼에게 붙들려 사고 팔리며 살아야 했던 사진과 삽화가 전시 되어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다시는 있어서 안 되는 범죄가 그곳에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충격적이었는지 일행중 어떤 이는 사진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금번 여행 코스
197살 바다거북에게 먹이주기
쪽빛 바다에 그림같던 해변
아랍인들의 좁은 골목길
영국 보컬 퀸의 싱어 머큐리 생가
다시는 있어서 않될 추악한 범죄
노예 이동 삽화
노예 운반선
한장의 사진속 노예상
박물관 안에 교회마당에 있는동상으로 노예는 출신지가 다르게 목줄을 매서 언어소통 불가로 함께 도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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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20일차
잔지바르에서 2일이 지났다. 이 도시를 지나며 민족 또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두 가지 중요한 요건이 있음을 생각하게한다. 우선 번성한 민족이나 국가가 되려면 첫 째 문자가 있어야 한다. 둘 째 바다를 접하거나 최소 강을 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가 없으면 역사가 단절되고, 교육도,국가의 형성도,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의 밀집화도 어려운 것이다. 한편 강이나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나라는 외부 세계와 단절, 우물 안 개구리로 뒤쳐져 발전하기 어렵다. 세 번 째를 굳이 꼽자면 인류에 비극이겠지만 국가간 전쟁이 아닐까 한다. 전쟁만큼 모든 면에서 급격한 발전과 변화를 가져 오는 것이 또 있을까?
하루 종일 돈 주고 흑인들에게 붙들려 다녔다. 버스에서 다시 목선에 실려 인도양에 있는 섬으로 끌려갔다.여행의 피로를 푼다는 의미가 있는 바다에서의 하루...하지만 다들 피로 누적으로 힘들어 했다
아랍계가 사는 곳을 벗어나 바닷가로 나오면 기온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노예의 후손이라고 보아야 할 딱히 할 일 없는 흑
인들이 그늘에 늘어져 있는 것도 잔지바르만의 특별한 인상이었다.
지금은 새벽 4시... 일기를 쓰며 2시간이 지났다. 살아 있음과 맑은 정신으로 의지대로 인생을 지배하며 살 수 있음에 감사
드린다.
썰물 때는 바다가 얕아누구든지 바지를 걷고 물 빠진 바닷속을 걸어가야 한다
30분 정도 거리의 섬으로 왔다
아랍의 삼각 돗대가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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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21일차
비행기 한번 타면 하루가 간다. 잔지바르에서 아프리카 사파리 진수를 맛 보기 위해 내륙 고원지대에 있는 아루사로 왔다. 잔지바르의 삼복더위에 있다가 해발 1000m가 넘는 곳으로 오니 초가을 날씨다. 내일부터 3일간 사파리를 떠난다. 하루 8시간 이상 사파리 차량을 타야하고 밤에는 텐트에서 자야한다.
아무튼 30일 동안 모든 식사를 사서 먹어야 했던 중남미보다는 준비해 간 햇반과 라면 덕에 먹는 것이 자유로우니 훨씬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아루사 호텔에서 본 도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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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22일차
아침 7시 호텔을 출발해서 저녁 6시경 세렝게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캠프에 도착했다. 흙먼지 날리며 초원을 가로지르는 비포장길을 11시간 동안 사파리 차량에서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았다.
이 모든 조건을 감수하고 이곳에 와 보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아프리카의 진수는 오지의 사람들과 상상 속에 자연을 대하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본능에 따라 원초적으로 살아가는 동물들과의 만남이 아닌가 싶다.
캠핑장으로 가던 중간에 인당 25불을 지불하고 마사이족 마을을 들렀다. 마사이족이란 소를 키우는 족이라는 뜻이란다.
TV에서 보던 대로 마을 족장을 비롯해 마을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환영의 노래와 춤을 추고 자신들이 사는 움막을 보여준다.
맹수로부터 십여 채 부락을 보호하기 위해 굵은나무 가지로 울타리를 두르고 원룸식인 집안에 들어서면 중앙에 난방과 음식을 만들어 먹는 화롯불이 있다. 4평 남짓한 공간 한쪽은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침상이 있다. 마을 중앙 통로에서 조악한 수공예품을 전시 판매하고 마지막으로 코흘리개들 유지원이라는 곳으로 안내한다.
유치원이라야 갈대지붕, 벽면은 나무를 얼기설기 두른 것이 다였으며 칠판에 스와힐리어와 영어 몇 글자 써놓고 아이들이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관광객들은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어 유치원에 성금을 내며 마사이 마을 관광을 끝냈다.
그래서 이곳까지 오는 길에서 보는 마사이족들은 입장료를 내는 관광객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환영했던 것일까?
마사이족 환영 쇼를 마치고 나오며 어쩌면 소 키우는 본업보다 관광수입을 위한 쇼가 더 본업이 되지 않았나 싶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사파리는 이런 것인가? 일직선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고 간간이 아카시아나무가 서있는 푸른 초원에는 TV에서 보았던 동물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수백 마리씩 떼 지은 모습은 누우라는 소과 동물이 으뜸이요, 버팔로의 묵직한 뿔은 수백 마리씩 떼를 이루지 않았다 해도 위엄이 가득했다. 높은 나무 잎사귀를 베어 먹는 기린가족 나들이도 보이고 톰슨가젤 등 사슴과 동물들이 초원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장대비속에 소하천에는 하마 무리가 있었고 저녁식사거리 찾아나서는 초원의 제왕 사자의 당당한 활보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곳 캠프장은 우리 일행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약 100 여명의 관광객과 현지 드라이버, 쿠커 등 스텝들
이 뒤엉켜 자정이 다되도록 시끌벅적 했다. 나미비아 사막 텐트생활과 별 차이 없이 개인용 텐트에 얇은 스폰지 한 장 깔고
누운 잠자리니 이곳저곳 배기기도 하고 낮에 장대비가 온 뒤라 습한 잠자리이니 당연이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여행 중 평소대로 새벽에 일어나 랜턴을 키고 일기를 쓴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짓 같겠지만 낮에 보았던 하이에나 녀석이 음식냄새 탓인지 애기울음 소리를 내며 캠프장주변을 맴돌아 다닌다.
아프리카의 초원의 밤인 것이다.
본격적인 사파리를 시작한다
옹고롱고로 전망대
기린가족
마사이족의 환영의식
마사이족 불씨 만들기 시범
유치원 방문
마사이 전사
드디어 세렝게티에 들어선다
자연의 기린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소 누우 떼
얼룩말
버펄로
초원에 듬성듬성 아카시아
세렝게티 야영장으로 밤새 하이에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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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23일차
아침7시부터 셀렝게티의 본격적인 사파리가 계속 되었다. 어제까지는 캠핑장에 오면서 볼 수 있었던 동물의 왕국이라면
당일은 적극적으로 동물을 찾아다니며 사파리를 즐기는 것으로 진행 되었다. 상상하기에 셀렝게티에 가면 지천으로 동물이 널려 있는 것을 생각하지만 동물의 수가 많은 만큼 끝없는 초원도 넓은 것이어서 짚을 타고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아야 했다.
셀렝게티 사파리를 끝내고 웅고롱고로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캠핑장은 웅고롱고로 분화구가 바라보이는 고도 2300m 높이에 있었다. 천둥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턴트를 치고 들어앉았다. 다행이 웅고롱고로 캠핑장은 와이파이가 간간이 터진다. 내일은 6시 출발하여 응고롱고로 분지로 내려가 코뿔소를 비롯한 또 다른 동물의 세계를 경험하고 아루사로 돌아가게 된다.
작은 하천은 하마떼가 저령했다.
이 암사자는 조금전까지 새끼 하마의 뱃속에 머리를박고 배를 채운후 사파리 찦차 바로 옆까지 거만하게 걸어왔다
식사후라 입주변이 젖어 있다. 차량 가까이 접근했다. 무시무시하다
초원에 몇그루 없는 나무 위는 사자들이 차지했다
위풍당당 숫사자이다
배가 불러서 인지 사나와 보이지 않았다
세렝게티 사파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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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24일차
마사이어로 큰 구멍을 뜻하는 응고롱고로는 유네스코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거대한 분화구이
다. 분화구 높은 곳에서 분화구 낮은 곳 평지까지 고도 차이는 600m나 되고 그곳에 동물의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전 4시간 동안 분화구로 내려가 사파리를 즐겼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코뿔소도 여러 마리 보았다.
드라이버에게 물었다. “치타는 볼 수 없나요?” 웃으며 그는 답했다. “돌아가 TV로 보세요”
오후.. 사파리 일정을 모두 마치고 갔던 길을 되돌아 아루사로 복귀했다.
웅고롱고로
웅고롱고로 분지로 내려가는 길을 막은 산악코끼리 ...눈, 투박한 가죽등이 다르다
코끼리 덕에 중간에서 일출을 맞았다
하이에나 무리
코끼리 무리 이동
웅고롱고로에 7마리밖에 없다는 코뿔소
얼룩말 떼
누우소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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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0일 25일차
6시에 호텔을 나서 3시간 30분을 달리면 킬리만자로를 오를 수 있는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게 된다. 입산수속을 마치고 10시부터 산에 올랐다.킬리만자로는 해발 5895m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당일 목표는 1897m 마랑구게이트를 출발해서 첫 번째 산장인 2720m 만다라산장까지 8시간 동안 왕복하는 일정이었다.
통상의 킬리만자로 1일차 산행은 만다라산장까지 8km를 걷고 산장에서 1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행의 난이도는 어렵
지 않으나 고산적응을 위한 스케즐이다, 이 날 산행은 오후 5시에 끝냈다. 7시간 걸렸다. 한 달간 여행으로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마지막 불꽃은 태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다시 3시간30분 차량 이동해 9시가 조금 넘어 아루사호텔로 돌아왔다.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출발점 마랑구게이트
만다라 산장 2720m
만다라산장
정상이 그리워 너무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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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22일 26-27일차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귀향의 본능이랄까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든 고국으로 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아루사에서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이동 비행기에 올랐다.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환승해서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킬리만자로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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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언
19세기말 무기력하게 끌려가던 흑인노예들이 떠오르고, 20세기에는 가뭄과 내전으로 TV 가득 굶주림에 죽어 가는 어린아이들과 앙상한 뼈를 들어 낸 사람들만이 사는 땅이 아프리카일까?
과연 뜨거운 아프리카는 인간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하고, 밀림과 사막에 뒤덮여 말라리아, 에이즈, 에즈볼라 등 질병이 만연한 .... 동물들에게만 천국인 저주받은 땅일까? 필자는 지난 1개월 동안 아프리카 55개국 중 7개국을 여행했다. 11억 명의 아프리카 인구 중 10000명 정도를 만나 보았을까?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을 얻은 것이 있다면 아프리카도 세상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농업국가로 살아가기에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가뭄 등 자연재해의 대가를 혹독하게 받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이번여행 중 가난 때문에 불쌍해 보이는 흑인은 보지 못했다.
즉 가난한 환경 속에 살아도 그들 나름대로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고 아기를 안은 부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진배없다. 한편 어느 나라이든 도시의 중상류층 사람들은 교육, 건강, 생활수준, 교양면에
서 서울의 중상층 사람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여행기를 마치며 우리나라 1950-60년대 삶의 수준임에도 느긋함과 행복해 보이던 아프리카의 넉넉한 땅과 하늘, 그곳에
사는 선한 사람들을 되새겨 본다. /끝.
2020년1월1일 夢思 독고철
3부에서 여분의 사진들
(탄자니아 잔지바르,킬리만자로)
거북들은 사람들이 주는 양배추를 먹었다
잔지바르 휴식 섬으로 나서다
섬에 도착했다. 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세렝게티로 가는 길목에 미술 토산품센타
마사이족 마을 환영식 행사
지팡이를 짚고 높이 뛴다. 그 누구도 현지인들 만큼 뛸수 없었다.
환영행사에 동참했다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
사진 배경의 평원이 세렝게티 국립공원이다
평원 한복판의 여유
킬리만자로 만년설 위용
휴계소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2720m 만다라산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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