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주

독고철 금강 종주 라이딩

독고철 2016. 8. 30. 13:15

 

독고철의 금강 종주 라이딩

 

 

초저녁에 이룬 잠은 무슨 심보일까 새벽2시에 깨고 았다. 더자야 한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정신만 맑게 무장한채 아침을 맞았다. 더워서 더는 참지 못한다고 에어컨에 목숨 걸던 이틀전 열대야가 무색하게 가을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국토종주에 이어 자전거로 4대강을 마무리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토요일 이른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택시로 갈아타고 대청댐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댐쪽으로 이동하다보면 경사면 계단 옆으로 자전거길이 있어 가볍게 오르면 된다.

  

 

대청댐 물관리센타 앞 자전거 인증소

 

2016.8.27 토요일 10시 정각 금강의 시발점인 대청댐을 출발하여 군산을 향해 달렸다. 대전지역 사람들의 이 깃든 자전거 길은 신탄진까지 정갈하게 꾸며져 었다.

 

50년전쯤 1975년도쯤 되려나? 대학생이던 나는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으로 경상남도 진주에 들렀던 적이있다. 그때 만난 진주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정이 넘쳐 지금도 진주사람이라고 하면 후한 점수를 주고 사람을 대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은 하찮은 자전거 나그네라 할지라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을 비교하게 되고 작은 감동을 받을 때는 전국적으로 그 지역과 사람들은 칭찬하게 되는 것이라, 보든 아니 보든 정성과 배려, 친절로 지역을 보이고 느끼게 한다면 돈으로 살수 없는 지역인심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금강은 4대강의 마지막 코스인데 참 점잖은 강이다. 강을 타고 주변으로 달리는 산들은 200m가 넘어 보이지 않았고 강의 폭도 그리 넓지 않아 큰 개울 같았다. 금강은 공주에 이르러 4대강 공주보 덕으로 넓은 강폭을 이루게 된다. 험한 곳도 없어 느긋하게 달리다 보면 도시에서 도시로 꼬리를 물고 달리느라 지루할틈이 없었다.

 

단지 신탄진에서 현도교로 강남에서 강북으로 건너야 한다는 점과 다리 건너서 즉시 강하부로 연결된 도로를 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은 것 같다.

  

 

현도교 10:30 (출발점에서 30분 걸렸다)

  

 

고속도로에서 대전가까이 가면 한국타이어 공장 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그곳이 신탄진이다.     

 


신탄진을 통과하여 세종시로 달렸다. 수도를 옮긴다고 야단 법석을 치던 세종시는 과연 어떠한 입지 일까? 늘 궁금한 생각이었다. 자동차나 기차와 달리 자전거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면 인간 기초동력으로 바쁘지 않게 도로나 철도변에서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을 자세히 감상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이 모든 역사와 유물, 도시는 강을 끼고 발전되어 왔기에 강을 따라 떠나는 4대강 종주는 그런면에서 사람에 따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며 느낀 세종시는 계룡산을 멀리 등 뒤에 두고 금강구간중 강 유역에 도시를 세울수 있는 넓은 들이 있는 곳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겠지만 금강을 따함께 달는 차령산맥 덕에 금강변에서 도시를 세울 한 곳은 그곳 밖에 없어 보였다. 


아무튼 금강은 4대강중  가장 점잖은 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4대강 중에서 중상류 짧은구간에서 대전시 세시 계룡시 공주시 부여시등 도시를 가장 많이 돌아서 바다로 나서는 강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수많은 도시의 오염된 물을 어떻게 정화하며 살아있는 강으로 바다에 이르게 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셈이다.

 

 

사장교 있는 곳이 세종시... 아치교는 KTX교량..이곳에서 강 상류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드디어 세종보에 도착했다.

 

 

세종시 강북 메인 도시..강 건너 남쪽에도 아파트 군이 보였다

 

 

새종시 강남북 통과 다리 하단부 자전거길

 

 

세종보에는 12시24분 도착했다. 대청댐을 출발한지 2시간 24분이 소요되었다. 세종보는 일반 댐식이 아닌 한강의 잠실보 처럼 강에 낮은 보를 건설해서 강폭과 저유량을 넓히는 역할의 세미 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공주를 향해 떠났다.

 

금강 구간 라이딩 중 두곳이 헷갈릴 수  있다. 첫번째는 신탄진 현도이고 두번째는 세종시 북단에서 다리를 건너 남단으로 진입후 고수부지의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는 문제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청색 라인을 찾아 진행하면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며 청색선이 사라지면 미련 없이 있던곳까지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4대강 라이더들의 필수 안목이다.

 

 

공주시 공산성 13:37 도착

 

 

공주시 공산성에는 13시37분에 도착했다. 세종시에서 자전거로 1시간 남짓, 차량으로는 20분 떨어진 공주 옛 읍성에서 점심을 먹고 가볍게 한바퀴 돌아 보았다. 공주시의 운명이겠지만 내 눈과 느낌에는 세종시에 젊은층 인들 다 빼앗기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시는 옛 백제의 왕도인데 내세울 것이라고는 작은 산채 정도의 공산성과 경주왕릉에 비해 보잘 없어 보이는 무령왕릉이 다인데 안몫이 있는 것인지 없는것인 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섧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제의 왕도로써 메스컴에서 대단한 일이라고 선전하는 무령왕릉의 진실, 그리고 왕도 다운 관광자원은 볼품이 없었고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무령왕릉 관광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공주시정자들은 그곳은 찾는 사람들이 "볼것 없어. 또 가"가 아니라 경주처럼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기억 되도록 역사와 관광자원을 재정비 하고 관광객이 며칠 묵으며 시간을 가지고 역사를 음미 할 수 있도록 관광자원의 발굴, 유지관리, 역사이야기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각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무령왕릉과 그 부장품들이 역사적으로 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당시의 삼국시대 상황과 일본과의 관계, 백제왕들의 무용담, 백제민의 위대함 등 말이다.

   

시간을 가지고 어렵사리 버스터미널 근처 중앙무도을 찾았지만 실소하고 말았다. 500평은 됨직한 그곳에는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조명과 음악소리만 요란할뿐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냥 구경만하고 발을 돌렸다. 그만큼 공주 경기가 없다는 증명 같았다.

점심먹고 공주 구도심 구경과 무도장에 갔다가 실망을 하고 고수부지 다리밑에서 5시20분까지 오수를 즐겼다.  열대야로 무덥던 며칠전을 감안해서 공주에서 하룻밤를 보내려 했는데 선선한 날씨에 마음을 바꿔 부여 백제보까지 달리기로 했다.

10:00출발- 세종시12:24- 공주 13시37분- 관광및 휴식, 17:20 공주보 출발 - 백제보를 지나 부여 19:00 도착순으로 하루를 달렸다

 

 

17:20 휴식을 취하고 공주보를 출발했다. 

 

 

 

공주보를 지나자 강폭은 한강의 강폭과 같아보였다 하류 백제보에서 물을 담은 탓이다.

 

 

18:40 백제보 전망대에 도착 했다. 이곳에서 내리막길 20여분이면 부여시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백제보

 


김종필씨의 고향 부여는 백제의 왕성으로 3000궁녀가 신라와 당나라 군대를 피해 뛰어 내렸다는 낙화암, 왕궁이 있었던 부소산 등 백제의 심장과도 같은곳이다. 예전에 낙화암에 가서 느낀 일이지만 3000 궁녀가 을 보살피며 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부소산성은 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와 견줄만한 고도 부여는 공주보다는 도시 규모컷고  잘 정비된 역사가 숨어 깃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곤한 모습으로 잠자리를 잡고 늦은 시간까지 부여거리를 다녀보았다. 관광지라서인지 늦은 시간까지 상가와 음식점들이 열려 있었고 사람들의 왕래도 있어 살아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콜레라ᆞ비브리오가 뉴스 화면을 달구고 있다. 횟집은 어디랄것 없이 다 문을 닫았다. 이 나라 횟집과 어패류 양식업자는 이번 사태로 가을까지 개점 휴업을 맞을 것이다.

 

 

08:30 부여 잠자리를 출발했다.

 

 

가는 빗방울이 오가는 부여시내를 돌아  다시 금강을 따라 군산을 향했다. 다행이 근육통은 없었지만 부여에서의 토막잠 때문일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라이딩을 계획하면서 날씨가 하도 고약해 하루 50ㅡ60km를 예상했다가 선선한 기운과 오르 내림 없는 자전거길에 첫 날 90km를 달려 공주가 아닌 부여에서 여장을 푼덕에 일정상 여유가  충분했었다.


8시30분 아침으로 갈비탕 한그릇을 비우고 커피 한 잔 후 길을 나섰다. 신통한것이 부여는 인구가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24시간 식당이 꽤 있었다. 의문이 들었지만 새벽밥을 먹는 사람들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시간 가는 비오는 거리를 자전거로 나서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바퀴회전에 고인물이 튀어 오름을 친구삼아 강진을 향해 달렸다. 

강진은 옛날부터 금강 뱃길을 타고 젓갈류가 발달된 곳이라고 했다. 요란한 강경 젖갈축제 현수막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이는듯 했다. 넓어진 강가에는소형어선들이 정박을 하고 있었다. 이른시간이라 젖갈시장 구경을 포기하고 마지막 구간을 달렸다. 부여 백제보를 지나면서 금강은 한강만큼이나  넓은 강폭과  풍부한 수량이 느린 흐름을 타고 금강하구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 여름 날씨탓과  4대강보 막은여파로  물의 흐름이 더뎌지면서 강가로 녹조가 보였다. "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진리가 그곳에서도 있었다.

매운맛을 보여 주려는지 마지막 14km을 남기고 땀내 나는 언덕을 3개 오르 내렸다.  처음 자전거 탈때 언덕 길을 만나면 힘으로 이기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힘보다 경험과 끈기, 적당한 수고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강이라면  한강ᆞ낙동강ᆞ금강ᆞ섬진강ᆞ영산강이 대표인데 가장 점잖은 강은 금강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강의 완주를 끝내며 나름대로 느낀 것은 강은 인간의 역사와 삶에 모태이고, 강마다 수만년의 비밀과 아름다움을 절도있게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을 완주하다보니 지금에 지역 사람들 성품도 강의 모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며 논문하나 써도 된다 싶지만 접기로 한다.

금강은 상류쪽 도시인 대전시 세종시 계룡시 공주시 부여시까지 너무 붙어서 도시 오염원이 배출되고 있어서 건강한 금강관리를 충청인 모두가 목숨 걸고 해야 할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 공장 적은 것이 위안인데  어디 인간만큼 자연을 오염시키는 괴물이 어디 있을까?

  

 

9:40  강경읍 통과 (이곳부터는 작은 바다 같았다.)

  

 

지루한 뚝방길에는 지역민들이 꽂아 놓은 바람개비가 코스모스를 대신하고 있었다.

  

 

금강하구가 가까와 오자 바다가 따라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인증소 ...

 

종주가 끝났다. 4시간이 지나 점심때가 되어 금강의 종착점에 도달했다. 지난밤 수면부족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심식사후 기력을 회복하며 새만금 고군산도를 가보고 싶다는 또다른 유혹에 빠졌다.  바다 한복판 고즈넉한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파도소리와 콜례라, 비브리오로 요즘 사람들이 먹지 않아 넘치는 해산물을 매운탕으로 끓여 먹으면 그만이겠다는 희망을 담아 새만금 방조제 중간에 위치한 신시도를 찾았다.

손바닥만한 섬과  30여가구가 다인 동네입구엔 금줄을 쳐놓고 예약 안한 손님 출입금지라며 막무가네였다. 조용한 바닷가 잠자리를 구하려다 아현실색을 하고 군산으로 돌아가는 빈택시를 흥정하여 군산까지 되돌아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그 조용하고 조그만 섬에 인터넷이 오두방정을 떨고 새만금 방조제와 교량으로 육로가 열리면서 인간들이 개미같이 몰려들고 주차장도 없으니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불 보듯 했다. 자구책으로 주민들은 금줄을 쳐 놓고 마을 출입자를 제한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는 외지 손님을 금줄로 박하게 내치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시는 고군산도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낭만의 서해바다 외로운 섬도 아니고, 아름다운 낙조를 고즈넉하게 바라 볼 시간이 정지된 여유의 섬도 아니었다. 손바닥 섬을 뒤덮은 차량과 등산객들... 뭐 본다고...뭘 느끼겠다고, 무엇을 찾아서 고군산도를 간단 말인가? 차라리 인천 연안부두가 백번, 천번 낫다.

비가 오는 군산 버스터미널에서 칼국수 한 그릇하고 서울로 향했다. 예정은 청주로 이동해서 오심재길까지 타는 것이었는데 고군산도 신시도에서의 실망은 더이상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도 라이딩을 계속하고 싶지도 않았다.


1박2일 알찬 금강 라이딩 이었다. 금강의 새로운 아니 숨은 모습을 볼수 있었고 말로만 듣던 세종시를 나름대로 분석할 수 있었다. 백제의 왕도를 2곳씩이나 돌아보았고 잔뜩 흐린 가을 날씨에 금강 종주를 끝냈다. 어찌 흐믓하지 않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