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철 설악산 비탐방
토왕성-칠성봉-화채봉-대청봉-용아장성 이야기
한편의 서사시와 같은 이야기들로 여겨진다. “꿈은 가진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했나? 그날의 컨디션을 위해 1주일 전부터 몸조심을 하며지내던 터였다. 그도 그럴 일이 설악산에 꽤나 드나들면서도 비탐방 4코스는 그 험준함에서나 체력적인 면, 법으로 출입 금지 시켜놓은 곳이라는 점에서 필자와는 거리가 있는 코스라고 체념하며 살아왔다.
드디어 언젠가는 하며 꿈꿔왔던 4개 비탐방 코스를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추석연휴를 끼고 조심스런 태동을 알려오던 5월 어느 날 두 눈 딱 감고 서둘러 예약을 해버렸다.
* 설악동 주차장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설악산의 비탐방 4개코스는 토왕성폭포, 칠성봉, 화채봉, 용아장성을 뜻한다. 몇몇 산악회에서 2개씩 묶어서 또는 단독 코스로 가끔씩 조심스런 회원 모집이 있어 왔으나 이번처럼 4개 코스 연속산행으로 중상급자를 대상으로 모집한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40명 정원 버스는 모집 며칠 만에 매진되었다.
추석 당일 자정 가까워 만 차의 버스가 설악동을 향했다. 예상대로 국립공원관리공단 매표소는 운영되고 있었지만 우리가 가고자하는 비탐방 코스 단속요들은 추석 다음날 새벽을 가족과 함께 있는 듯 했다.
03시40분 드디어 이마에 불을 단 40명의 일행이 휘엉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비룡폭포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원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자 추석 대보름달은 간곳없고 짙고 어두운 터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토왕성 폭포
후레쉬를 비춰야 보일 듯한 비룡폭포를 눈에 담고 “비탐방길 출입금지“라는 간판을 지나 평범하지 않은 급경사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토왕성 폭포까지 대부분 길은 계곡을 넘나들며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비가 많아 수량이 넘치면 위험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주차장에서 1시간10분이 지나 토왕성 폭포 아래까지 도착했다. 05시10분 깊은 산속의 침묵과 어둠은 일행의 전진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05시30분이 되어 여명이 들 즈음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토왕성 폭포를 향해 일행들이 줄지어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폭포는 거대한 바위 병풍을 두르고 중간 중간 3단 폭포를 이루며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운좋게 며칠 전 비가 온 탓에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동양 최대 최고 토왕성 폭포 ...가 봐야 압니다
* 멋지지요?
* 폭포를 정면으로 기어 오릅니다. (손든 사람 필자)
* 폭포 오르기가 쉽지 않지요
* 2단 폭포에서 아침겸 휴식
급경사의 바위길을 올라 2단 폭포까지 전진했다. 오랜만에 리찌를 해서인지 두려움도 생기고 편안한 심정도 되질 못했다. 이유는 실수로 미끄러져 떨어지면 살 것 같지 않은 높이까지 이미 전진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남아있는 300m 정도의 본격적인 절벽 오르기를 위해 주최측에서 로프를 설치하러 간 사이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6시 정각 폭포 좌측을 공략하는 정상도전이 시작되었다. 정상까지 총 3곳의 로프가 내려졌다. 사람이 비켜 설 수도 없는 공간에서 앞사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보며 마음을 졸여야 했고 정작 필자의 순서가 되어서는 무아지경에 빠져 로프에게 생명을 구걸하며 매달려야 했다.
로프가 없는 구간은 급경사를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서 올랐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2시간 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 지 정신이 없었다. 8시 정각 토왕성폭포 정상을 밟았다.
* 토왕성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 긴장했음이 진지한 표정에서 역력하다
왜 비탐방 구간으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선 로프 없이는 위험천만한 절벽구간이요, 또 한 가지는 전구간 낙석이 우려되어 사고당하기 쉬운 지형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 출입을 금지 시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칠성봉 (1076m)
새벽녘에 없었던 구름이 칠성봉 과 토왕성 폭포를삼켜 버렸다. 칠성봉은 이름 그대로 7개의 뽀족스러운 바위 봉우리가 북서쪽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 산군이다. 설악동 케이블카가 닫는 권금성에서 남동쪽으로 유난히 뽀족스럽게 보이는 산군들이기도 하고 양폭산장 천불동 반대 계곡 위로 보이는 험준한 바위군이기도 하다.
칠성봉은 정상부터 계곡까지 이어지는 바위 절벽이 일품이라던데 불행하게도 구름이 계곡을 한가득 채우고 있어 절경을 감상할 수 없었다.
* 칠성봉 정상
비법정 탐방로이다보니 이정표와 산악회 리본도 전혀 없었다. 단지 외길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간간이 구름 사이
로 내비치는 절벽의 서늘함을 느끼며 09시04분 칠성봉 정상이라는 바위구덩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화채봉 (1320m)
칠성봉 정상에서 오르내림을 하며 육산이나 다름없는 화채능선을 향했다. 일단 위험한 구간을 통과 했다는 뜻이다. 화채봉 정상에는 10시 12분에 도착했다. 04시에 출발하여 순 산행 6시간이 흐른 셈이다.
사람들은 왜 화채능선에 오르고 싶어 할까? 바로 화채능선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이 절경이기 때문이라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구름으로 가득한 설악은 한 순간도 그 장쾌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움을 필자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화채봉 정상에서 후미팀들을 기다리며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후미라고 해야 이번 산악회 팀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선두와 후미는 길게 잡아도 30분 내에 범위에 있었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이동하는 시간차일 뿐 전원 중상급 이상 산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각자 본인만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산행이었다.
화채봉에서 주의 할 점은 삼각김밥처럼 생긴 정상석을 찍은 다음 대청봉을 가려면 정상바위군 아래로 난 길을
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날씨가 좋으면 대청봉을 바라보며 진행하면 되는데 당일 같이 구름 속 산행에서는 자칫
바위아래가 아닌 뒷길로 빠질 염려가 있는 곳이니 유념해야 한다. (이정표가 없으므로 착각하기 쉽다)
30분 정도 대청봉과 각을 이루는 능선 저부까지 내려갔다가 대청봉을 향한 마지막 오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날씨 흐린 화채봉 정상
대청봉 (1708m) – 중청대피소
그 때부터 대청봉 정상까지 2시간30분 오름이 시작된다. 다들 7시간에서 8시간 산행후의 오름이라 쉽지 않은 발
걸음이었지만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터이라 체력에 맞게 능력에 맞게 길고도 지루한 정
상을 향한 길을 밟아나갔다.
구름에 가려 대략의 높이를 구분 할 수 없었다. 다만 숲의 변화를 읽으며 대략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즉 소나무나 상수리나무등 키가 큰 나무들이 점차 줄어가며 나무의 키들이 작아지면서 가지가 억세어 진다는 것은 산의 고도가 1500m이상이라는 것을 의미 한다. 키 큰나무들이 줄어들고 협소한 산길을 난장이 관목류들이 억세게 얽히어 있는 길을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 간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이었다.
드디어 구름을 뚫고 올라 화창한 정상의 날씨 맞으며 헬기장에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0여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대청봉 정상에 섰다.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고 중청 대피소로 하산했다. 그곳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평상 위에서 짧지만 달콤한 토막잠에 빠졌다.
* 대청봉에서 바라본 중청 대피소
* 중청에서 바라본 대청
후미 3사람이 국립관리공단 직원들에게 핼기장에서 적발되어 확인증을 썼다고 했다. 적발되어 확인증을 쓰게 되면 첫 번째는 10만원, 두 번째 적발 때는 20만원, 세 번째 적발 때는 50만원의 개인 벌금이 떨어진다고 한다.
선두팀이 되어 하루 일정이 마감되는 소청대피소로 이동했다. 소청대피소에는 15시에 도착했다. 산행시작 11시간 만이었다. 이어서 후미 대원들이 12시간만인 16시에 도착했다. 산악회에서 예정한 시간 내에 전원 완주를 마친 것이다.
소청대피소
배낭을 대피소 그늘진 마루에 기대고 윈드자켓으로 보온 한 채 낮잠에빠졌다. 34시간 만에 취하는 잠이었다.
대피소는 16시30분부터 사용 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을 수시로 내고 있었다. 통제를 위해서는 어쩔 수없는 제한이 아닌가 싶었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사전 인터넷 예약이 되지 않은 사람은 예외없이 공단 직원들과 함께 강제 하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새로 단장한 소청 대피소
* 대피소 사용료
* 대피소 판매물품 및 가격 (햇반은 전자렌인지에 돌려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피소에서는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박을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는데 비박을 제한하려는 공단의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대피소란 말 그대로 산을 찾은 사람이 도움을 받으려고 있는 것이지 공단 편의에 의해 산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쫓아버리는 장소가 되어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주변에 야영지를 지어주고 대피소 예약이 않된 사람은 비박할 수 있도록, 음식과 물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비상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저 바의 봉우리를 타고 넘어야 한다. 에구 살벌해라!)
* 소청에서 바라 본 공룡능선
* 드디어 하루해가 뉘엇뉘엇 진다.
마루에서 졸다가 산속의 이른 어둠을 느끼며 잠자리를 배속받아 짐을 풀었다. 하루 종일 아내가 싸준 주먹밥 3개로 버텼다. 언젠가부터 대피소는 고기 굽고 술 마시고 소란스러운 장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하고 정숙한 휴식이 좋으련만 소란을 떨며 자신이 뭐 그리 잘났는지 있는대로 주접을 떨다가
싸움질이나 않으면 다행인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다들 대피소에서는 공중도덕 지키고, 목소리 낮추고, 잠자리에서도 집에서 하던 안하무인의 바보 짓 말고 타인을 배려하는 점잖은 모습으로 이용합시다.“ 영상 10도인데도 바람 탓인지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를 회상하며 다들 깊은 잠에 빠지는 9시경 눈을 감았다.
용아장성 (龍牙長城)
나이 탓이라고들 하지만 5시간이 지난 다음날 02시에 눈을 떴다. 용아장성의 뜻은 공룡의 이빨이라는 뜻이라는데 오가며 눈으로만 보아왔던 용아장성을 드디어 타고 넘는 날이다.
5시 봉정암을 향해 하향 산행을 시작했다. 불심 많은 신도들이 심심치 않게 대청봉 일출을 기대하며 산에 오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어지러이 불빛이 오가고 있음을 보며 05시30분 봉정암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신도와 등산객들이 긴 줄을 서서 공짜로 주는 미역국밥의 자비를 받아먹고 있었다.
필자도 합세해서 국밥을 받아 들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도로도 없는 이 높은 곳에서 공짜로 밥을 해 먹이려면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커에서는 스님이 “서울 신사동 아무개 합격축원” 등 사람들의 소원을 빌며 기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소원을 비는 저분들이 필자가 먹는 국밥의 주인일께다 하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시주단지에 얼마간의 돈을 넣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이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 봉정암 05시30분.....수 백명의 많은 사람들의 무료급식에 감사하며
* 무료급식 내용
* 커피 한잔도 무료....너무 감사 했네요
* 07시 사리탑에서 바라본 봉정암
부차님 사리가 모셔졌다는 사리탑으로 올랐다. 용아장성을 타는 시점에 선 것이다. 한 눈에 무시무시한 용의 이빨을 보며 슬그머니 걱정이 앞섰다. “만용 아닌가? 이번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거야.”
* 봉정암 사리탑
* 사리탑 옆 경고문
* 출발을 기다리며 바라본 용아장성 시작부
* 출발대기
* 출발대기
시작부터 절벽 40m쯤을 로프를 타고 하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음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30m의 절벽을 로프에 매달려 타고 넘었다.
*시작부터 절벽 하강이다
너무도 절박 한 것은 내 한 목숨을 맡기는 로프가 너무 어설프고 그나마 시중 일반 나일론 노끈을 꼬아서 만든것을 비롯해 너무 허약해 보이는 줄을 잡을 때마다 “내가 탈 때만은 잘 버텨라.” 주문을 외우며 산행을 해 나갔다.
* 바위산 중앙 빨간점이 사람이고 그리로 가야 한다.
* 사진은 이래도 90도 직벽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산을 다니며 그렇게 아름다운 비경을 접해 본적이 없었고 이토록 위험한 구간을 즐긴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로프와 리찌로 거의 전 구간을 돌파했다. 글 솜씨가 미흡하여 그 아름다움과 호연함 위협스러움을 표현치 못함을 아쉬워하며 산우들이 찍은 사진과 필자가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실는다.
* 절벽을 타고 넘으면 또 다른 절벽이 기다렸다.
*진짜 웃고 있을까?
* 안개가 차고 짐은 순식간이었다. 용아의 위용!
*용아장성의 위용 (저 봉우리를 타고 넘는지는 가보면 안다)
* 타고 넘은봉우리를 되돌아 보며
* 천하제일 비경을 마음에 담으며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로프야 내 차례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 대부분 벼랑 위였네
* 이런 우회로를 만나면 서슴 없이 돌았다.
* 으아! 대단한 용아장성이다
* 9봉중 4개봉이 남았다.
* 하루 종일 기었다.
* 으아! 대단한 용아장성이오.
9봉에서 옥녀봉으로 향하며 그 중 압권은 1봉의 “게구멍 바위”가 아닌가 싶다. 바위 봉우리를 믿지 못할 허약한 로프를 끼고 내려가면 대부분 그랬지만 주변은 까까지른 절벽이요, 가야 할 길을 가로 막은 커다란 바위에 “위령 동판”이 박혀 있다.
바로 우측 아래로 바위를 안고 돌면 그곳에 4줄 정도의 로프가 모암과 위령동판이 붙어 있는 바위틈에 늘어져 있다. 게 걷듯이 옆으로 발을 교차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름붙은 “게구멍 바위” 그곳이다.
통과요령은 줄을 잡고 까마득한 절벽위에서 몸을 한껏 절벽쪽으로 제치고 두 다리로 버티면서 게걸음으로 통과하면 되는 곳이다. 난이도는 높지 않으나 절벽에서의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리라 생각했다.
* 사진 가운데 하얀점이 오세암
* 용아장성을 끝내가면 되돌아 본 능선....높은 산이 중청이다.
가운데 바위 중앙에 위령 동판이 박혀있다. 빨간 복장 사람이 통과하는 구간이 게구멍바위이다.
그렇게 해서 용아장성 – 용의 이빨 같은 험한 바위군을 6시간 만에 전원이 무사히 통과했다. 수렴동 계곡을 접하고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영시암, 백담사 버스터미널까지 15시에 도착해서 8시간 만에 산행을 마쳤다
*수렴동 계곡
* 수렴동 대피소
*수렴동 계곡의 옥수
* 산행이 종료되고 백담사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아직은 괜찮은 나이인지 체력적으로나 무릎등 기타 능력에서 30%정도의 여력은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히말라야, 킬리만자로를 향한 목표 체력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용아장성을 자연의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설악의 제일의 숨은 비경을 안전 시설들을 보강해서 전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전구간이 위험개소지만 사고등에 대한 부담으로 출입을 통제 하는 것도 그리 옳은 것은 아닌듯 싶다.
한편 국가에서 출입제한한 구간을 다녀 온 필자도 반성을 한다. 하지만 수요에 의한 공급의 원칙이 있듯이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을 가 본 사람이 용아장성을 경험한다면 누구든 쉽게 천하절경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위험개소에 안전 로프나 통로를 설치하고 전문 안전 가이드 동행 조건등 별도의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에게 그 절경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