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여행기

독고철 이스탄불 3부

독고철 2023. 3. 3. 11:38

이스탄불

 

카파토키아에서 비행기로 이동하였지만 9시가 되어서야 이스탄블 호텔도착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하루 10

이상씩 버스이동은 끝이 난 셈이다. 그러나 가이드 말로는 이스탄블에서는  버스신 걷는 시간이 그만큼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현대도 식량 문제는 중요한 국가적 관목이지만 고대에도 중동 등 식량이 부족한 나라는 우크라이나 곡식이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지중해에서 우크라이나 항구한 흑해로 가는 길목에 콘스탄티노블은 자연히 기원전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콘스탄티노블은 BC8세기말 경 그리스인들점령하여 비잔티을 세웠고, 324년 동로마가 점령 콘스탄티노블 수도로 정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1923년 튀르키에 공화국이 수립되어 수도가 앙카라로 천도 되었으며, 1930

콘스탄티노블은 이스탄불로 공식개칭 되었다.  

 

이스탄블은 인구 약1572만명의 튀르키에 최대도시이며 유럽 최대 도시이다. 

(2위 스크바 1269만명, 3위 런던 900만명)  도시의 주인은 그리스, 동로마제국, 스만제국, 튀르키에 순으로 변경

되었다. 비가 잦은 편이며 단층대가 존재해 튀기에는 언제 대지진이 발생 할지 모른다고 한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 콘스탄타노블성의 상세 지도이다. 좌측하단 도면을 보면 이 철옹성은 삼각뿔 형태의 육지 끝부분에(붉은) 있는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요새였다.

 

큰 도면에서 붉은 라인이 높이 7m 전후의 곽 둘레이고 오른쪽은 에게해, 쪽 좁은바다BOSPHORUS바다이다.

도면 내 위쪽에 사원이 세계8대 불가사라는 성소피아 사원이다.

 

세계7대 불가사의 - 뉴세븐원더스 선정

중국 만리장성, 이태리 콜로세움, 페루 마추픽츄,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페드, 멕시코 체첸이사, 브라질 예수상

(성소피아사원은 공식화 되지 않았다.)

 

유물을 근거로 도시화한 상상도 

 

외곽성벽의 높이는 7m 전후였다관찰해 보면 이들은 이미 벽돌을 구워 성곽 쌓기에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기원전 알렉산더대왕 이전 시대인 트로성에서도(청동기시대) 벽돌을 구워 성이나 건축자재로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왕족

 

AC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창건한 비잔틴 문화의 최고 걸작이라는 성소아 사원을 관람을 위해 1시간30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내부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이 사원은 기독교 교회로 창건되었으나 오스만제국에 멸망 당 한 후 교회내에 기존 기독교 성화는 회칠로 덮혔고 이슬람 사원으로 변형되었다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가 공존해 이 사원은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성당에 이어 세계 2번째로 큰 사원이다.

 

성소피아 사원 내부로 이곳을 보면 이스 관광의 80%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던데 지구촌 가족들이 각각의 피부색을

가지고 성당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아마도 이 사원 하나만으로도 이스탄불은 세계관광명소로 영원하리라 싶었다.

 

사원 최상단에 중앙 커튼으로 가리운분이  있는데 이는 성모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상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술탄 아흐멧 모스크 (블루 모스크) 

1609년 오스만제국 술탄 아흐멧 모스키가 인접한 성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위를 보여주기 위해 건축한 이슬람 사원으로 이스탄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 수리중이라 겉에서만 감상 수 있었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입구

 

시장내부....건축물 안에 있고 지붕이 치형으로 덮혀 있어 색다른 분위기였다.

 

오벨리스크는 왕이나 귀족, 장군들이 후 공적을 통 돌에 새겨 세운 탑으로 오스만제국 잘 나갈 때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 것이었다.

 

술탄(황제) 내 궁의 의자

 

모세지팡이를 보려고 1시간 줄을 섰다

 

숟가락 크기의 다이어몬드

 

보검

 

황제의 투구

 

오스만제국의 박물관으로 튀르그족의 유물, 트로이, 그리스, 이집트, 로마,스만관 등으로 구분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황제의 금관

 

알렉산더대왕의 석관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 실존 미이라와 관들.... 이외에도 이집트 유물이 꽤  많았다.

 

이집트 토기

 

 

대리석 대형 조각상 전시품이 300점은 넘는 듯 싶었다.

 

이스탐불의 명동거리...세계 인종 종합전시장으로 마스크 쓴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물론 우리 일행도 슬그머니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이스탄불의 야경

 

피에로티언덕에 케이블카로 올랐다.

오른쪽 육지가 콘스탄타노블이다. 육지 가운데 바다가 BOSPHORUS로 육지 사이에 강처럼 보이는 바다이다.

15세기 오스만은 콘스탄티노블의 에게해쪽에서의 공격으로는 점령이 불가능해지자 에게해에서 산에 길을 내어 (진에

서 왼쪽 육) BOSPHORUS해로 전투함을 이동시켜 성 배후를 공격해서로마제국 콘스탄티노블성을 함락 멸시켰다.

 

배경의 성은 돌마바흐제성으로 오스만가장 큰 궁전중에 하나이다. 바로 이곳에BOSPHORUS해로 가는 산을 넘는 전투함이 출발했다고 한다.

 

돌마바흐제성 1839 1861 기간 동안 건설하였다. 내부는 285개의 방, 44의  거실, 68개 화장실, 6개 목욕탕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지 4500평에 세워진 내궁이었다. 건물내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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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말

 

유럽문화의 시작은 그리스 헬레니즘 문명과  동로마 비잔틴 문명을 빼고 논 할 수 없다이번 그리스와 튀르키에 여행을 계획하면서  두 나라의 역사를 점검 할 수 있었고 상상에 그리스와 튀르키에를 두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어서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두 나라 모두 큰 나라들로 하루 평균 10이 넘는 버스 이동이 고통스러운면도 있었지만 차창으로 전해져 오는 자연과 환경의 변화, 잠시 잠깐 그곳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