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철 인도 타지마할
독고철의 인도 타지마할
(2019.9.30.-10.05)
인도 알아보기
1. 인구
약 13억 5천만명 (2018년 추계)
- 중국 14억 2천만명 이어 2위
2. 면적
대한민국 32.7배 (세계7번째 큰 나라)
1. 러시아 2. 캐나다 3. 미국 4. 중국
5. 브라질 6. 호주 7. 인도 8. 아르헨티나
9. 카자흐스탄 10.알제리
3. GNP
2135$-세계143위, GDP3조달러세계5위
(참고 한국 32775$ 23위, GDP1.65억달
러 11위)
4. 종교
힌두교 83%, 이슬람 13%, 기타 4%
(불교는 0.86%=신도 약1100만명)
수도 : 뉴델리 (인구 약 2천만명)
아그라의 타지마할...세계7대 불가사의 무굴제국 이슬람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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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이륙해서 8시간30분을 서쪽으로 날아가면 인도 수도 델리공항에 도착한다. 도착비자를 받으려고 긴 줄을
늘어선 북새통 구간을 지나 도착구를 나서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인도인 가이드가 안내 종이쪽지를 들고서 반겨
준다. 그때부터 인도 여행이 시작된다.
인천- 델리 비행 순시간 8시간30분 시차 3시간 30분
인도 그러면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될까?
우선 1858년-1947년 90년간 영국식민지... 힌두교 등 수많은 신들의 고향...13억 5천만 명 국민이 얽혀서 살아가는 곳...비위생적이고 기반시설 부족한 가난한 나라...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델리...간디, 네루....등등이 연상된다.
이번 여행은 11월 아프리카 세미배낭에 앞서 인도 맛보기라도 하고 싶어 5박 6일 북인도 트라이 앵글이라는 뉴델리, 자이푸르, 아그라(타지마할)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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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소감부터 간단히 적어보면
1. 이번 북인도여행은 이슬람 무굴제국의 고궁과 신전, 타지마할을 둘러보는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즉 정신적인 종교의 발상지로 깊이 있는 인도 모습을 기대 했다면 북인도가 아닌 바나라시,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찾아야 한다니 필자는 다시 시간을 내서 남인도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나이 든 사람이 인도여행을 계획한다면 후한 값을 주고 가서 좋은 호텔이나 좋은 음식을 즐기면서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빈부의 격차가 심해도 너무 심해 보였고 대부분의 국민이 먹고 살기 바빠서 딴 생각을 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뉴델리 c최고 대학을 나와 첫 봉급으로 50만원 내외)
4.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임에도 위생적이지 못했다. 먼지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묻혀버린 무질서함이 넘쳐 나는 혼란의 도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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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인도 델리 공항
델리- 자이푸르 인도국내선 비행기 이동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창문 950개)- 하와마할 궁전-
자이푸르 노천에서 하는 헤나 문신.....다시 하라면 하지 않을 것 같다,
자이푸르 암베르성
자이푸르 도시주변 산위에 암베르성 외성.... 성곽이 산세를 따라 뱅 둘러 섰다.
외궁 왕의 테라스
내궁...이슬람 무굴제국 별장으로 쓰던 궁
암베르성 내궁에 그 시절 벨기에에서 수입된 유리, 보석으로 치장된 궁전이 있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로 이동중 중간지점에 지하 우물궁전 아베네리쿤다이다. 지하 16m , 지상 온도 여름 50도이나 지하궁전은 16도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여름철 왕들의 피서 별궁이다.
우물에 궁전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 유명한 것이다. 우물로 내려가는 수많은 계단도 압권이다
멀쩡한 사람이 사진을 찍자고 하고는 여지없이 1불을 달란다. 1달라? 인도는 사진이든, 사소한 친절을 베풀고도 무조건
1달러를 달라고 한다. 그러니 몽땅 경계할 밖에.......아그라로 가는 고속도로 식당
악바르 대제 무덤 정문
건물 중앙에 가짜석관이 있고 진짜 석관은 건물지하에 있다는데 출입금지이다..
인도는 GDP 세계5위국이며 GNP는 143위 2135 $ 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1억3천5백만 명은 부유하게 산다는 것이고 나머지 약 12억 명 국민은 필자 15살 때인 우리나라 1970년도쯤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우리나라도 상하수도시설이 없어 검게 썩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고, 태풍이 오면 서울이 물
바다에 도로포장이 1차선 정도여서 사방에 먼지가 피어 올랐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대부분 모든 국민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10리 정도 학교길은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고 사이다는 소풍때나 마셔보는 귀한 음료수였다. 학교에가면 점심시간에 운동장 수도꼭지에서 물로 점심을 해결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고 겨울이면 연탄 한장과 봉지 쌀을 사서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1970년이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들이 일군 대한민국이다. 우리 때는 월남과 중동 건설현장에서 청춘을 불살라 오늘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은 엄연한 역사사실이 아닐까? 그 시절 해외 나갈수 있는 사람은 외교관과 해외 일자리가 있어 파견 나가는 사람들만 가능했다. 그래서 공항의 이별은 온 가족이 환송, 환영을 하는 진기한 풍경이었고 이 풍경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의 후진국 공항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며 한국으로 아빠 찾아 삼만리의 아픈 영상이 4-50년 전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신통한 것은 영국이 통치하지 않았다면 기존 왕족들 지배와 착취로 현재보다 더 암울한 세상에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일제 36년, 토착왜구, 일제청산을 진행한다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셈이다.
도로에 하수구가 없어 30분 비가 오던 날 뉴델리는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전 도시가 잠겨 버렸다. 서로 먼저 가려는 차량들의 아비규환 속에 자연 배수로 물이 빠질 때까지 저녁을 먹으러 나섰던 늦은 저녁시간 버스 안에서 2시간이상 창밖을 내다봐야 했다.
또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인도 여인에 대한 것이다. “가이드 선생! 인도 여자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애교와 매력이 넘치나요?“ 28살 ”반“이라는 가이드는 절대 아니라고 손사례를 쳤다. “인도 여자는 수줍음이 많고요, 애교나 매력은 아예 없어요. 그 점에서는 한국여성들이 열배 백배 낫습니다. 애교는 영화에서만 그래요.“ 그 친구는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 했다고 한다.
인도를 오가며 인디아 항공 스튜디어스를 지켜보며 그 친구 말을 인정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든지 스튜디어스는 지적수준이나 교양, 미모등 기본적으로 중상층의 매너는 가졌다고 봐야하는데 많은 국가 비행기를 타 보았지만 인도처럼 손님에게 화난 표정으로 불친절하게 써빙하는 스튜디어스는 처음 보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가까이 와서 뻣뻣한 자세로 근엄한 얼굴을 한 채 딱 잘라 묻는다. ”커피?“ 커피 말고 “쥬스”를 달라면 대꾸도 없이 쥬스를 화난사람이 디밀듯 “획” 승객에게 한 손으로 디 밀며 딱 한마디 한다. “쥬스”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불친절한 스튜디어스들은 하나 같이 인도인이나 한국인에게 똑 같이 미소 없이 골난 표정으로 그런 퉁명스런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당연한 듯 받아 드리는 것도 신기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 그렇지 않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본 있어 보이는 인도여인들은 인도영화에서나 잘룩한 허리에 배꼽을 내밀고 큰 눈을 껌뻑이며 엉덩이를 흔들면서 남자마음을 흔드는 것이지 실제로는 큰 눈을 껌뻑이며 서양여인보다 더 고자세에 마님 같은 근엄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짧은 인도 여행...기억 속에 남은 것이 있다면 인도는 13억 5천만 인구의 40%인 약5억4천만 명이 문맹이고, 겉으로는 구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처럼 부의 세습내지는 넘지 못할 벽이 느껴짐은 나만의 상상일까?
요즘은 천민들이라도 공부를 많이 하면 수상이 될 수도, 좋은 직장도 가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천재나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조건의 극소수 사람들 이야기 일터이고. 굳혀진 사고와 현실 속 국민 대다수는 요원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神 들의 고향으로 정적인 태고의 자연스러움과 성스러움을 고대하고 떠났던 인도여행은 이렇듯 현지의 혼란 속에 떠밀리며 이슬람 무굴제국왕궁과 타지마할 등 왕가의 무덤,신전들을 돌아보다가 끝이 났다. 토착 신앙 등의 인도를 느끼려면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새기며 다시 기회가 된다면 神 들의 고향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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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성
아그라성 (무굴제국의 본성)
붉은 사암으로 된 해자가 있는 아그라성으로 사암 사용 이유는 대리석에 비해 구하기 쉽고, 가공, 조각하기 쉬웠기 때문으로 대부분 인도 성과 신전은 붉은사암으로 건설되어 있다. 강건너로 왕비의 무덤 타지마할이 보인다
아그라 성의 내성
내궁 우측 테라스가 왕의 거주하는 왕궁으로 사진속 건물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작은 원형이 타지마할
이다. 왕은 언제나 왕비를 그리며 타지마할을 보며 살았다. 3번째 왕비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 왕은 왕비 사망후 22년동안 이곳에서 왕비를 그리며 타지마할을 건설했다.
아그라 성에서 강건너 보이는 타지마할
내궁 공주의 방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창문은 타지마할로 향해 있다.
외성으로 외부인 접견테라스로 규모가 컷다. 사랃들과 건물을 비교해보면 상상이 된다.
접견실 테라스
무굴제국 왕성을 둘러보았다. 무굴제국은 중앙아시아 티무르제국의 후손으로 1526년 무굴제국을 건국하고 인도 대부분을 장기 통치 하였다.
무굴제국 전성기는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쉬를 포함한 대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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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세계7대불가사의)
타지마할은 100% 흰대리석이다
세계7대불가사의는 보는 것 만으로도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른 새벽임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좌측 붉은 사암건물은 이슬람사원이다. 오직 왕비 1사람의 무덤으로 타지마할이 22년동안 건설되었다.
여행객처럼 멀정하게 잘 차려입은 중년 사내가 멋진 사진을 찍어주겠댜고 접근해서 사진 몇 장 거의 강제스럽게 찍어주
고 얼굴을 싹 바꿔 돈을 달란다. 인도판 사기꾼 아니고 무얼까? 이래서 공짜의 친절은 없다는 세계공통어이다. 이럴땐 그냥 노탱큐하고 친절을 피해야 한다. 필자는 당했다.ㅎㅎ 그래도 사진 한두 장 건졌으니 여행의 묘미이다.
거대한 타지마할 건축물의 흰대리석에는 빈틈 없는 조각들이 가득했다
타지마할 하나만으로도 이곳 아그라는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을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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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악차르담 힌두사원으로 규모나 모습에서 이스탄불 사원과 흡사하다
델리 외곽지역 자동차 물결로 동남아와 마찬가지로 경적소리 홍수이다
최신기계가 있지만 소규모 공사는 인건비가 싸므로 이렇게 인력으로 콘크리트를 생산해서 건물을 짓고 있다.
예상대로 인도는 최신과 낙후, 최상류와 최빈곤이 공존하는 나라인 것 같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할 것 없이 인간역사는 빈부, 지배와 피지배자 존립이 태고 때 부터 있는 것 아닐까? 사진속에 가난한 이 사람들 땀에 쩔은 어깨가 가여웠다. 필자 기억에 1970년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혼잡스러움, 먼지 구덩이, 남보다 앞서 가려는 다툼, 오가는 삿대질......어느 나라이든 공통점은 있는자의 주변은 여유로운데 반하여 없는 자들의 주변은 고성과 다툼이 심하다. 아마도 삶에 지치고 살기위해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나라든 주어진 삶속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
세계 문화유산 "꾸톱 탑"
높이 72.5m 이슬람기도를 알리는 탑 돌과 진흙, 벽돌깨진것을 섞어서 중심부 코아를 만들고 (매우 단단했다) 바깥쪽에 접착제를 사용해서 사암과 대리석을 붙였다. 1500년대 우리 이조 초기시대때 이슬람의 기술은 규모나 높이, 정교함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물론 탑 안은 계단이 있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기도하라고 알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정사각형에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왕과 친인척들 석관이 있다. /끝
여분의 사진 몇 장
관광객에게 인도는 공짜가 없는 나라이다.
타지마할 뒤편 갠지즈강.......유행인지 관광 온 듯한 한국여인들의 인도 옷차림이 곳곳에 보인다
진짜 완전한 대칭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