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독고철 교동도 트레킹

독고철 2017. 12. 12. 13:38

 

 

독고철의 교동도 트레킹

 

 

교동도는 강화도와 석모도 북단에 있는 섬으로 느낌 그대로 북한의 해주평야를 지척에 두고 있는 섬이다. 삼국시대부터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초입으로 강화도와 더불어 군사적 요충지였다. 트레킹하며 이 섬은 조선시대 읍성으로 경기수어청

존재 했으며 우리나라 유인도 491개 섬 중에 14번째 크기의 섬으로 중국사신의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북한이라는 적을 코앞에 둔 긴장감이 분명했다.

  

 검은색 선이 트레킹 진행노선

 

 

2017.12.10 올라가줌  192차 송년 산행으로 교동도에 다녀왔다. 625월남 후손으로 가능하면 북쪽에 다가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려며 살았는데 그날은 미뤄왔던 교동도를 향해 눈오는강변역을 출발했다.

 

전날 서울은 3-5cm의 눈이 내렸고 낮은 기온에 곳곳이 빙판져 대로를 벗어난 골목길은 눈과의 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이 9시를 넘기자 기온오르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녹아 질척이는 눈길을 달리는 차량은 그리 많지 읺았다.

 

강화대교를 지나  교동도까지는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교동도 진입 다리부근에서 해병초소출입자 연락처를 적어 내고 그대로 교동대교로 입했다. 왕복 2차선 교량은 사장교였다. 다리는 건너며 내친 김에 해주까지 다리를 놓으면

예측컨데 30분이내에 해주에 진입할수 있고 통일이 되었을 때 금싸라기 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웃었다.

 

육지쪽 교량 입구에 인원및 신분 확인 해병초소 

출입카드

사진의 다리가 교동대교이다(오른쪽은 강화도 고려산)   

월선포 선착장  

 

 

 트레킹은 10:45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서 시작했다. 해안에 축조된 방파제 길을 따라 동진포, 남산포까지 약 1시간을 왼쪽은 바다길, 오른쪽은 갈대 숲 길로 느림보 걸음으로 걸었다.

 

남산포에서 다시 읍성으로 길을 잡고 20분 정도 걸으면 교동읍성에 도착한다. 오래전부터 외적을 감당 있는 군사요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읍성 내외로 가정집들이 빼곡이 들어앉아 한참 복원중인 성루만이 외롭게 옛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소로를 따라 화개산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향교와 화개사 갈림길이 나온다. 산에 오르려면 화개사쪽이 맞으나 잠시 돌아가면 향교를 돌아 볼 수 있다.          

  

교동 읍성 (성루를 복원중이었다) 

옛날 장군, 관리들의 비석

향교  

교동향교가 있던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큰 읍성중에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향교에서 20여분이면 화개사에 도착한다

 

 

화개사에서 임도와 등산로를 30분 오르면 화개산 정상 (259.6m)에 오를 수 있다. 능선부 200m 정도는 제법 가파름이 있으나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든 오를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교동도하면 무엇을 상상했을까? 바로 이 곳 정서 북한땅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는데 능선에 도달하자 북에서 남으로 해무가(바다안개) 밀려왔다. 당연히 보고 싶었던 북녘땅은 지척을 구분 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었다. 바로

코앞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잠시 정상 사진 한 장 남기고 효자묘 방향으로 길을 잡아 교동 면사무소를 향했다. 북사면으로 정상에서 300m 가량은 경사지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정상에서 40분 정도 내려오면 연산군 유배지가 나온다. 관광지로 잘 정리 되어 있으며 밀랍 인형으로 상황을 연출해 놓아 눈요기감이 되었다.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방이 너무 작아 실제 저런 크기였을까 싶었다.

 

하산을 종료하고 면사무소에 있는 대룡장터를 걸었다. 1960년대 장터 모습이 재현되어 있는데 이곳까지 교통편도 어렵고  너무 북쪽에 가까와서인지 우리팀 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교동도 트레킹을 마치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문 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딱히 머물기가 좀 어색한 이유는 서울과 교통이 좋아  숙박 관광객이 너무 적고 섬 인구가 적어 놀이나 대표음식이나 음식점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팀만해도 트레킹후 바로 강화면으로 나와 밴뎅이 회무침으로 식사를 했다. 강화에서 교동도 다리가 생겨 편리함도 생겼지만 유입된 사람들이 되돌아 강화로 나오는 것을 붙잡을 만한 특별한 그 무엇이필요하겠다 싶었다. 강화 그러면 화문석, 벤뎅이 무침, 순무 하듯이 말이다.  

 

끝으로 이주 천천히 진행한 당일 트레킹은 3시간45분 정도 소요 되었다. /끝

 

 

여분의 사진

 

선사시대 암각화 

 

 

방안에 연산군 밀납인형이 있다,  내관과 무수리는 이곳에서 일평생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꼬? 

 

대륭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