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철 응봉산 100대명산
응봉산 (998.5m)
1주일째 비가 온다. 장마전선이 서울 근처에 머물며 해를 가린 탓이다. 모든 것이 눅눅하고 기분 마져 착 가라 않는 토요일 아침 산악회에서 초보자는 참가 불가하다는 100대 명산중 하나인 응봉산 모집광고를 떠올리며 복정역으로 갔다.
역시 1주일째 비가 왔고 당일에도 폭우가 예상되어서인지 복정역에는 그 많던 산군들과 산악회 차량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최소한 자신이 중급이상 산꾼이고 비가 온다고 산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비를 피해 지하철 역사에 모여 있었다. 7시10분 몰아치는 빗 속에서 2대에 80명으로 구성된 일행이 응봉산을 향해 출발했다.
응봉산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강원도 삼척시의 경계를 이룬 산으로 서울에서 그곳까지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다.
"응봉산은 높이는 약1000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서울에서 거리가 너무 멀고 제대로 종주를 하려면 최소 7시간에서 9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대부분 산악회에서는 무박 혹은 1박2일로 진행하는데 우리는 오늘 당일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집시부터 안내해드렸지만 초보자에게는 절대 무리한 산행입니다. 모두들 중견 이상의 산꾼들이시니 안전하게 산행을 해주십시요. 차량 2대중 1대는 선착순 40명이 차면 서울로 출발하겠습니다."
안내 브리핑이 있었다.
내가 탄 1호차 안을 둘러 보았다. 40명중 5명 정도가 내또래 나이이거나 조금 위로 보였고 나머지는 40-50대 초반의 젊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산의 들머리인 덕구온천에 11시40분 우리를 풀어 놓았다. 무려 4시간 30분
이동을 한 셈이다. 선착순으로 40명 이내에 들어야 조금이라도 서울에 빨리 갈수 있는 여건이어서 다들 선수들 답게 전투산행이라고 해야 할 가벼운 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응봉산을 안내판대로 오르면 도봉산 난이도의 3.5시간-4시간 정도 평범한 초보산행이 된다. 그러나 일단 정상을 넘어 종주산행으로 들어가 용소계곡으로 입장하면 사연이 많이 달라지며 중견이상 산꾼들에게 적합한 산이다.
일행은 덕구온천 계곡길이 아닌 옛능선길을 따라 전진했다. 예정시간 2시간 30분이었으나 2시간만에 정상에 도착해 보니
다람쥐 같이 날랜 산꾼들이 이미 20여명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나름대로 쉼없이 올라 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젊음이 좋은 무기이다 생각했다.
13시40분 정상에서 기록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었다. 간혹 몇몇 일행들이 있어보였지만 대부분 홀로 산행하는 산악회
분위기답게 식사들도 각자 알아서 전투하듯 홀로 식사를 마치고 바쁜 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달았다.
태백산맥에 한봉우리인 응봉산 주변에는 태백산, 덕항산, 두타산, 백운산등 고봉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위험하다고 입산이 금지된 용소계곡길 12km로 들어섰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인지 산길은 소박했고 나무는 숲을 이뤄 어둠침침한 날씨와 더불어 홀로 내닫는 산길을 을씨년스럽게 했다.
15시경부터 비가오기 시작했다. 비를 너무도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비가 쏟아부으면 나보다 더 비를
좋아하는 그와 함께 하는 술 한잔이 생각났다.
계곡으로 들어섰다. 말로만 듣던 용소계곡 오지 계곡산행이다. 우선 길이라고 생각할 만한 곳이 드물었다. 계곡을
수십차례 횡단하며 20여 곳의 벼랑길 외줄 횡단은 나름 군 생활 유격 훈련을 연상케 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 지구상에서 제일 큰 뱀인 아나콘다가 돌산을 지그재그로 갈라 놓은 듯한 항아리 모양에 계곡은 응봉산 용소계곡에서 폭우를 만나면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위산 항아리 모양의 계곡에서 대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그 지역에 가뭄이 들어 계곡의 물이 시원하지 않았고 수량 또한 적어 지난해 떨어진 낙엽들이 계곡을 채워 시커멓고 갈색을 띤 물이 하류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한 번쯤 큰 비가 와서 싹 씻어 내려간 후라면 무색 무취의 넓고
깊은 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의 장관을 횡으로 걸린 밧줄에 몸을싣고 벼랑을 타고가며 만끽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워 했다.
비오는 계곡 산행 ...아무래도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 뛰다보면 위험이 따른다. 미끄어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도와줄 사람 없이 큰 낭패이다 싶어 속도를 늦추고 쉬는 시간을 없앴다. 발 끝에 집중하고 빨리 보다는 안전을 생각하며 정말 끝없는 지그재그 오지의 계곡을 타고 내려왔다.
이런 돌산 계곡에서 큰비를 만나면 (일 강우 5mm 이상) 피 할 곳 하나 없는 거의 죽음이라고 생각해야 할듯...
그래서 비 오면 용소계곡 들어가면 곤란 할 것 같다.
요즘 전문산악회와 자주 동행하며 생긴 버릇하나가 있다. 그것은 스타트에서는 어차피 전투산행을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자리가 잡히고 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산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홀로 산행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홀로산행을 즐기는 이유를 굳이 밝히자면 소란스럽지 않게 자연을 그대로 혼자 느낄수 있다는 점. 내 스타일 내식대로의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 산 속에 나 혼자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는 점. 제일 좋은 점은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 그 날도 나는 산행이 계속되는 동안 한마디 말도 남들과 섞지 않아서 좋았고 그냥 내 생각에 몰입되어 산행을 즐길수 있어서 좋았다.
11시40분에 출발하여 목적 지점에 18시10분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6시간30분 그러니까 정상 밟는데 2시간, 계곡산행에
4시간30분 구간을 80명 중견 산꾼들틈에 끼어 20번째로 마쳤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아직은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어 흐믓했다.
40번까지 도착자를 기다려 1호차를 채운 차량은 7시에 덕풍계곡을 출발했다. 당연히 비오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기도를 거쳐 늦은 밤 11시 20분 복정역으로 복귀했다. 산행을 마치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상쾌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맛에 주말이면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아 길을 나서는지 모르겠다.
끝으로 응봉산 용소계곡 종주 산행은 초급자가 나설 산은 아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끝
할 산이고, 중급자 이상이라도 기상예보를 잘 알아보고 비예보가 있다면 다음 기회로 미루는 지혜가 필요한 산이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