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철의 계룡산
독고철의 3월 계룡산 (845m)
2016.3.7. 블러그 만든지 1076 일째 만에 (약3년) 방문자 누계 10,000명을 돌파하는 날이었다.
컴맹을 제외한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는 얼마일까? 그중에서도 10,000명이나 되는 분들이 내 블러그를 찾아주고 아주 가끔 댓글을 달아주는 분도 계셨으며 개인적으로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있어 너무 좋았다.
다시 한 번 블러그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블러그에 기록하는 체험 이야기들을 통해, 느낌이 비슷한 사람들의 공감 나눔터로 키워나가고 싶다.
3월의 첫 주
2016.3.05. 토요일 오후부터 장마비처럼 시원스레 비가 쏟아지기 전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부용산을 올랐다. 일요일까지 계속된 비를 탓하며 밀렸던 사소한 집수리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은 둘째 집에 손녀를 보러 외출을 했었다.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손녀는 이제껏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점잖은 아이였는데 이제는 제법 감정 표현도 익숙하고 상대를 빤히 바라보며 낯을 가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다행이 손녀는 할아버지를 외면하지도 울지도 않고 잠시 입을 삐죽이며 낯선 표정을 짓다가 반갑게 미소로 안겨 주었다.
2016.3.12. 토요일
드디어 대장정을 꿈꾸며 겨우내 묵혔던 싸이클을 정비했다. 내친김에 집을 나서 광나루 다리에서 구리시까지 고수부지 자전거길을 달렸다. 어색했어야 정상일텐데 지난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의 느낌이 남아 있어서인지 부자연스러움
없이 가볍게 라이딩을 즐겼다.
봄의 혈기가 넘쳐서일까? 반바지 타이즈 차림의 젋은이들이 무리지어 자전거길을 달리고 있었고 가끔은 나이든 사람들은 오리털 파커와 동계바지,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자전거에 올라 강변의 봄을 맞고 있었다.
젊음은 그리 좋은 것이다. 그런 모습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아직은 장갑 낀 손이 시리고 등짝에 땀이 약간 날 정도의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강바람의 차가움에 감기를 걱정하며 1시간 정도로 올해 라이딩의 마수걸이를 했다.
국토종주는 2015년에 끝을 냈고 2016년에는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려면 오천길, 금강, 영산강, 섬진강, 동해안도로 그리고 제주일주를 마쳐야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 땅에서 더 이상 달릴 곳이 없게 된다. 어서 계획을 짜보아야지.
2016.3.13. 일요일
올라가줌 산악회 계룡산 시산제가 있었다. 14년 동안 한 달에 한번 대부분 참가하며 우의를 다졌던 산악회이다.
중악단 - 보물 제1293호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출처] http://me2.do/xFkdtPME
주능선 관음봉 ...이곳부터 자연성릉이 시작된다
동학사 입구로 나와 산행을 마감했다
서울 출발을 앞두고 계룡산에 해가 걸렸다
공주 갑사를 지나 신원사에서 (입장료 2000원) 출발하여 계곡길이 아닌 등선길로 올라 주봉인 천황봉을 바라보며 연천봉과 관음봉에 올라 종주를 아쉬워하며 자연성릉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고약한 급경사 돌계단 길 지나 동학사로 하산했다. 다음에 홀로 산행으로 저 멋진 자연성능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면서....../끝.
08:00 – 공주 신원사 10시50분 차량이동 2:50
10:50-11:50 신원사 계룡산 산신제 1:00
11:50-14:20 연천봉 (1.8km 급경사) 2:30
- 중식 30분 포함
14:30-15:00 관음봉 0:30
15:00-16:40 동학사 (급경사 돌계단)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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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산행시간 4:10